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un 03. 2019

저마다의 자유 여행

후배에게 '등대 스탬프 투어' 얘기를 들었다. 국내 15개 등대에 가면 스탬프가 있는데 찍는 개수에 따라 메달을 준다고 했다. 후배가 아이들과 6월에 떠난다며 직접 짠 여행 계획을 보여주었는데, 매일 아침 7시 기상으로 시간대별 10분 단위로 식당이며 숙박 이동 계획을 9일간의 일정표에 촘촘히 넣어놓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아이들 어릴 때 여행을 가려면 계획을 미리 세세하게 세우는 편이었다. 맛집이며 갈만한 곳 들을 하나둘 찾아 넣다가 시간이 모자라면 일어나는 시간을 당겨 계획을 맞추었다. 여행에서는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어 이른 기상은 쉽지 않은데도,  단잠 자는 아이들 부지런히 깨워 데리고 다녔다. 느지막이 일어나는 여행의 여유로움 따위는 게으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때면 정해진 스케줄을 완벽히 실행해야 하는 미션 완수의 느낌을 안고 떠났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니 자유 여행이겠지만, 남들이 좋다는 곳을 위주로 이미 짜 놓은 계획을 따라 실천하는 여행이었고, 아이들에게는 결국 일정표를 따라가는 아빠표 패키지여행이었다.


여행의 방법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다. 책이나 여행 관련 카페, 블로그 등을 꼼꼼하게 검색하고 많은 이들이 좋다는 곳들 미리 정하여 예약하고 스케줄 다 짜 놓고 출발하여, 그곳을 찾아서 ‘역시 좋구나.’ 하면서 하나하나 즐기는 사람이 있지만, 별 계획이나 예약 없이 떠나서, 그냥 현지에서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는 사람도 있다. 우리들 자유 여행의 방법은 이 두 스타일 사이 어디쯤엔가 있겠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난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이상은 ‘삶은 여행' 중)


우리는 태어나면서 삶이라는 여행에 계획 세울 틈 없이 던져졌다. 삶은 자유 여행 같은 것이라서 길 위에서 실패하고 좌절하거나 이루고 기뻐하는 일을 끝까지 지속한다. 여행의 본질은 낯선 것에 자진해서 다가가는 행위다. 인간은 낯선 것에 본능적 두려움을 가지도록 진화해왔지만 한편으로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다. 여행 계획은 낯섦에 대한 수위를 조금 낮추어 그 안에서 조금의 익숙함과 나머지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정도가 좋겠다. 


세상에는 정보도 많고 자칭 멘토나 가이드가 참 많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유 여행인 삶에서 자꾸 패키지를 따르라고 한다. 삶의 파도가 적당히 있어야 타는 재미가 있는 것을 가지고 위험은 일단 피하고 보라고 한다. 이들 말을 따라 '남들 좋다는 곳에는 나도 가야지.'하고 계획에 넣다 보면 해외여행에서 가는 식당마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찬 경험을 하게 된다. 오히려 복잡한 길을 헤매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현지 정취 가득한 곳이 훨씬 멋지고 기억에 남는다. 저마다 자유를 느끼는 스타일이 있고 만족을 느끼는 코드도 저마다 다르다.

"어제는 날아가 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이상은 '삶은 여행' 중)


여행에서 돌아와서 얘기하다 보면 먼저 다녀온 이들이 가끔 그런다. “야 거기 같으면 그거는 먹고 왔어야지. 거기는 다녀왔어야지. 그거는 해봤어야지.” 아니다. 그거 안 먹고 거기 안 다녀오고 그거 안 해봤어도 나는 즐거웠다. 그러면 되었다. 언젠가 내가 죽은 뒤에 그곳에 먼저 온 이가 나에게 그럴지도 모른다. “야 인간으로 살았으면 그런 거는 해봤어야지. 거기도 가봤어야지.” 괜찮다. 충분히 즐거웠다. 그러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분갈이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