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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08. 2019

문지기가 할 일

'쥴' 담배의 국내 판매가 시작되었다. 미국 전자 담배 시장 75% 점유율, 샤프심 통 같은 슬림한 몸체, 저렴한 가격 등의 스펙을 갖고 있어서 출시 전 기대가 컸으나 초기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지 않다고 한다. 피워본 이에게 물어보니 목구멍을 ‘탁’ 치고 넘어가는 그 ‘무엇’이 없단다. 그들의 용어로는 '타격감'이라고 하는데, 니코틴 함량이 적어서 그런지 '목넘김'이 아쉽다고 했다. 맥주를 마실때도 짜릿한 목넘김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던데, 우리의 목은 혀끝에서 시작하여 입을 거치는 미각을 마무리하는 중요 기관인가 보다.

사진: 쥴랩스코리아

맛은 식욕의 전제가 되므로 무엇이든 먹어야 사는 인간에게 미각은 제일 중요한 감각이다. 시각, 청각, 후각과 같은 감각은 깨어있는 시간 전체에 작동하지만, 미각은 무엇인가 입에 넣을 때만 작동하는 감각이다. 일상적인 감각과 비교하면 이용되는 시간은 그중 제일 짧겠지만 '소화'라는 긴 뒤처리 프로세스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 


목 넘김으로 마무리되는 짧은 미각 활동이 끝나면, 그 이후 영양소로 바꾸고, 저장하고, 해독하고, 내보내는 등의 일은 소화 기관과 배설 기관의 몫이다. 맛이 달콤하네, 감칠맛이네, 목 넘김이 좋네 뭐네 하는 호강은 윗동네에서 다 누리고, 그 뒤처리 작업은 뭔가 누린 것 하나 없는 아랫동네 기관들이 다 한다. 감각기관이 코, 입, 목에서 흡연의 여유를 누릴 때, 몸 속에 자리 잡은 폐는 공기 정화로 바쁘다.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켜고 잠자리에 들면 간은 알코올 성분을 해독하느라 야근에 돌입한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입으로 무엇이, 언제 어떻게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 체질에 영향을 미쳐 건강이 달라진다. 미각 담당 기관이 긴 안목 없이 짧은 순간 달콤함과 짜릿함에 빠져 자극적인 것들에 계속 입장 티켓을 끊어 들여보내는 문지기라하면 결국 몸 전체가 점점 힘들어지고 약해진다. 맛 있는 것을 먹을 시간이 결국 짧아진다.  


미각이 몸의 건강에 중요하듯 삶의 곳곳에 위치한 문지기들이 역할을 잘해야 한다. 좋구나 하고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다시 돌이킬 수 없거나, 미리 끊었으면 되었을 일을 괜히 한다고 한 후에 뒷처리가 고생스럽다. 뭐가 좋고 나쁜지 문지기가 잘 살펴야 하는데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목마 속에 그리스 군사들이 있는지 트로이의 문지기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가 정말 저런 사람이었는지 감미로운 연애 시절 마음의 문지기는 어찌 알 수 있었을까?  



회사 포탈 화면에 정기 건강 검진 예약을 하라는 팝업창이 떴다. 아마 검사를 받고 나면 결과지는 몸 안의 기관들이 문지기를 성토하며 불평을 쏟아낸 말로 가득할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문지기 탓에 그동안 홀대받다가 이렇게 살아서 어쩔 거냐고, 제발 좀 가려서 적게 먹고 운동 좀 하라고 수치를 들이대며 따질 것이다.


적을 만들기 보다 내 편 만들기가 훨씬 더 어렵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몸 속 기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 매일 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내 편은 응원하고 챙기고 지켜야 하는 것인데 그동안 소홀했다. 삶 곳곳에 있는 문지기들이 그런 일들을 잘 하고 있는지, 입장 티켓을 남발하지는 않는지, 혹시 졸고 있지는 않는지, 삶의 VIP 손님 대접에 소홀하지는 않는지 다시 점검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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