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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17. 2019

오랜만에 하는 일

자전거를 타러 올 들어 처음으로 한강에 나왔다. 봄부터 날이 풀리면 나와야지 하다가 끝내 이렇게 더워지고 나서야 한강 라이딩을 시작했다. 다행히 오늘은 미세먼지 없는 무척 좋은 날씨여서 오랜만에 만나는 한강의 물결과 강 너머 건물, 흰 구름 모두 햇빛에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한강 변을 달리다 보니 그동안 도로를 새로 깔아 놓은 곳도 꽤 있었고, 강변 수상 카페도 새 단장을 해놓고 있었다.

한동안 안 타다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처음에는 예전에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냥 다른 이들이 추월해가는 속력이  빠른 느낌이면 페달을 조금 더 빨리 밟아 따라갔다. 처음에는 내가 전에 이렇게 빨리 달렸나 싶다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제 느낌을 찾았다. 작년보다 몸이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다가 뻑뻑해진 자전거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작년 가을에 타고 그대로 두었으니 꽤 시간이 흘러서 그렇다.

"나는 또 뒤돌아보지만 내게 남아있는 건 그리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 (김현철 '오랜만에' 중)


오랜만에 하는 일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부드럽게 연결해준다. 내가 '나'인 이유는 과거부터 움직이고 생각하며 표현하고 반응하며 해온 내 모습이 '나'라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는 일은 비어가던 내 실체의 부분을 다시 자리 잡게 하여 스스로 돈독해지는 느낌을 준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은 나를 확장시키는 일이고, 한참 안 하던 일을 다시 챙기는 것은 나를 채우는 일이다. 나의 몸이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생각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에 대한 감정은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오랜만에 하는 일은 현재의 나를 과거에 비추어 다시 돌아보게 한다.

철이 덜 든 시절에 열정을 가지고 몰두했던 일과 집착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은 마음 어딘가 오롯이 남아 있다. 오랜만에 옛날 노래를 들어보면 마음 한 구석의 그 시절 기억이 고구마 캐듯 후두둑 한꺼번에 딸려 올라온다. 예전 영화나 책을 다시 보고, 자주 갔던 장소를 다시 찾거나, 한참 안 하고 있던 취미를 다시 해보면 그 시절의 내가 아직 그 안에 들어있음을 발견한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동물원 '혜화동' 중)


생기 있게 마음을 두드렸던 내 고유한 리듬이 조금씩 잊혀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안 많은 자전거가 나를 휙휙 추월해 지나쳐갔다. 사람마다 고유한 리듬은 서로 다르기에, 빨리 달리며 즐기는 이도 있고 천천히 풍경을 즐기는 이도 있다. 빠르기에 정답은 없어서 그냥 서로 배려하며 리듬에 맞게 달린다. 


오늘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내 삶 속 기본 박자는 단순하더라도 리듬은 풍부하기를 바랐다. 내가 오랜만에 하는 일이 잊었던 마음 리듬을 찾아내어 다양한 리듬에 춤출 일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올해 내내 자전거 라이딩 리듬이, 그리고, 삶의 리듬도 흥겹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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