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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마음을 분갈이할 때

우리 집 고무나무가 겨울을 지내며 전과 달리 시들해졌다. 평소보다 물을 흠뻑 주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분갈이용 큰 화분과 흙을 사 왔다. 화분을 툭툭 쳐 화분과 흙에 틈을 만들고 줄기를 당겨 올리니 화분 모양 흙덩이가 묵직하게 딸려 올라왔다.


뿌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뿌리가 길게 자라 화분 안에서 빙빙 똬리를 틀고 있었다. 엉킨 뿌리가 젖은 흙을 꽉 쥐고 있어 물 빠짐도 제대로 안 되어 보였다. 뿌리를 살살 풀어 사이사이 젖은 흙을 떼어내고 큰 화분에 옮겨 담았다. 새 흙을 천천히 붓고 토닥토닥 채워 넣으니 나무가 숨 쉴 공간이 생겼다.


뿌리는 나무의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 전체에 활기를 공급하면서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 뿌리에 문제가 생기면 잎이나 줄기 빛깔이 달라진다. 나무에 무지하거나 관심에 게으른 이는 물을 더 많이 자주 주는 섣부른 처방을 내리곤 한다. 무심한 부지런함이 꼭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듯 과한 습기는 오히려 뿌리를 더 힘들게 한다. 뿌리는 좁은 틀에 갇혀 엉킨 채 어쩔 줄 모르며 약해진다.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세상의 공격에 몸을 던져 막았는데 내 몸 맞고 우리 편 골대에 공이 꽂히는 것 같은 순간, 자판을 눌러도 도저히 모음이 쳐지지 않아 자음만으로 소통해야 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해는 길어지고 봄꽃은 봉오리를 피워 올리는데 마음은 겨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마음의 뿌리는 빙빙 돌아 엉킨다. 엉킨 뿌리는 흙에 수분을 가둔다. 줄기를 지탱하려 흙을 움켜쥐지만 젖은 흙은 움켜쥘수록 해롭다. 

젖은 마음에는 분갈이가 필요하다. 잔뿌리가 조금 상할 각오를 하고 일단 후두둑 뿌리째 뽑아야 한다. 젖은 흙 털어내고 넓은 화분에 옮겨 새 흙으로 토닥토닥 채워 주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의 뿌리가 기지개 켜고 다시 새 흙으로 가만히 팔을 뻗을 것이다. 봄 햇살을 받은 푸른 잎이 양분을 만들어 뿌리로 내리고 뿌리에서 뽑아 올린 수분이 다시 잎으로 전해지며 마음의 순환으로 건강을 회복할 것이다.


분갈이를 하면서 그동안 조금 굽었던 고무나무가 새 화분에서 바로 섰다. 어서 뿌리가 자리를 잘 잡아 건강히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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