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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ug 16. 2019

마음의 보호 그물

야구장에 가면 경기장과 관중사이에 보호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강하고 빠른 파울 타구에도 관중이 다치지 않도록 펜스 위쪽에 기둥으로 그물망을 세우는데, 그 설치 방식은 구장마다 다르다. 한국과 일본은 파울 구역 전체를 비교적 높게 두르는 데 비해,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은 시야 방해를 이유로 보통 내야 더그아웃 정도까지만 낮게 그물을 설치한다. 그래서, 관중이 강한 파울 공에 다치는 경우는 특히 미국에서 많이 발생한다. 매년 미국에서만 1,800명 야구 관중이 다친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들어 파울 공에 맞은 관중이 사망하거나 어린아이 두개골이 골절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며,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보호 그물 설치 범위 확대 방침을 내놓고 있으나 실제 설치 속도는 더디다는 기사를 보았다.

야구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보호를 위한 그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선풍기 날개에 아기 손가락을 다치지 않게 둘러 씌워놓기도 하고, 양봉업자는 벌에 쏘이지 않도록 모자 아래에 매달아 그물을 뒤집어쓰며, 서커스에서는 공중 곡예사가 자신 있게 공연할 수 있도록 그 아래에 넓게 그물을 펼쳐놓는다. 보호 그물은 그물코보다 큰 사물의 통과를 막으며 시야를 확보하고, 팽팽한 탄력으로 사물을 감싸 충격을 흡수하여 보호한다.  

보호는 모험의 전제 조건이다. 모험을 위해서는 스스로 어느 정도 보호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소방관, 스쿠버다이버, 우주 비행사와 같이 두텁고 질긴 보호 장비를 갖추는 이들은 그만큼 큰 위험을 무릅쓴다. 제대로 된 보호 장비 없이 모험에 뛰어든다면 우리는 무모하다고 말한다.


놀이 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높은 곳에서 빙빙 돌고 갑자기 떨어져도 즐거운 이유는 보호 장구가 몸을 꼭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공을 치고받고 달리는 경기를 눈 앞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도 보호 그물이 시속 150km 넘게 날아오는 공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어 가능하다. 보호는 만약 없으면 도전하지 못할 모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삶은 크고 작은 모험의 연속이며 우리는 모험을 통해서 성장한다. 어린 시절 걸음마와 달리기를 배우고,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는 것도 우리에겐 모험이었다. 그 모험의 길에는 우리를 격려하고 잡아주고 다친 곳을 돌봐주는 보호의 손길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 놓고 도전할 수 있었다. 모험과 보호의 대상은 점점 달라졌지만, 그 보호와 모험의 방정식은 계속 유효하다.

요즘 들어 인터넷 기사나 댓글, SNS를 보면 심하다 싶은 글이 눈에 많이 띈다. 다름과 배려에 대한 몰이해, 실수에 대한 비웃음, 약자에 대한 무시와 업신여김의 단어들이 마치 강한 파울볼과 벌떼처럼 위협적으로 날아든다.


당사자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위험이 도달하지 않도록, 저열하고 천박한 단어들이 우리 문화로 되지 않도록 적절한 그물코로 걸러내고 막아줄 탄력 있는 그물, 아이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펄쩍 뛰는 모험을 할 수 있도록 감싸줄 그물이 필요하다. 사회적 배려나 개인의 마음을 통해서 그런 보호 그물이 촘촘히 설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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