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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31. 2020

놀이 기구 타는 마음

석촌호수에서

휴일 오후 석촌 호수. 봄과 여름 사이에서 좋은 것만 뽑아 펼쳐놓은 날씨였다. 바람은 선선하면서 포근했고,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호수를 둘러싼 벚나무들이 적당히 가려주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호수 둘레 벚나무 그늘에 하나하나 제 몫의 그림자를 더해가며 걷고 있었다.

누구에겐 산책이고 누구에겐 운동 또는 데이트, 서로 다른 목적이지만 대부분 약속이라도 한 듯 호수 둘레를 도는 방향은 시계 반대 방향이다.  마치 육상이나 빙상 선수가  것처럼, 야구 선수가 공을 치고 뛰어나가는 것처럼... 심장이 왼편에 있거나 지구의 회전 방향이라거나 주로 오른손잡이라서 그렇다거나 해석은 다양하지만, 어쨌든 왠지 그게 자연스러워 도 그 방향으로 책을 시작한다.

같은 방향으로 도는 들은 추월과 뒤처짐으로 속도가 비교된다. 걷는 목적과 연령에 따라 그 속도를 대충 구분할 수 있다. 혼자 운동 나온 청년이 제일 빨리 뛰어다니고, 대개 운동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그다음이며, 데이트 나온 연인이나 등산복 차림의 노년 남성이 가장 느리다. 느린 만큼이나 시간 여유도 많아 그런지, 호수를 향해 놓인 벤치에는 주로 연인이나 노인들이 앉아있다. 햇볕이 잔물결에 부서지는 모습을 아련히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으로, 누군가는 옛 기억을 담고 누군가는 미래의 기대를 담는다.

호수 가운데 인공섬은 놀이공원과 이어져 있어 놀이 기구 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놀이 기구의 핵심은 중력을 거스르는 물리학이라서, 뚝 떨어지기 아니면 빙글빙글 돌기가 기본다. 벤치에 앉은 연인들은 놀이 기구 비명 소리들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섭겠다. 그치?"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 앞에 놓인 삶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쭉 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뚝 떨어지고, 정신없이 빙빙 도는 일 벌어질 것이다. 지금처럼 여유로운 시간, 기대와 배려의 영역 안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다.


놀이기구에 탄 이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거워하는 이유는 안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무섭지만 위험하지는 않다는 믿음, 결국 속도는 점차 줄어들고 승차한 곳에 다시 살며시 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원해서 올라타진 않았더라도 삶은 놀이 기구 타는 것과 비슷하다. 오르락내리락하고 빙글빙글 돌며 정신없지만, 언젠가는 속도를 줄이며 살며시 종착점에 닿는다. 무서워하며 시간을 보냈든지 즐거워하며 보냈든지 간에 결국 내려야 할 지점에 다다른. 그러니 굳이 진짜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높은 곳에서는 호수의 경치를 즐기고, 우두두두 떨어질 때 으악 소리 한번 크게 질러주면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 보면 미치도록 빠른 속도는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일이 많다. 롤러코스터가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고, 흐린 날이 지나면 맑은 날이 오고, 꽃은 피었으면 떨어진다. 밀물이 들어오는가 하면 다시 빠지고, 밥을 먹으면 배부르다. 사람이 삶을 이어가는 것도 당연한  중 하나다. 당연한 일을 잘겠다고 너무 달려들 즐거움과 거리가 생긴다. 단지 당연한 것을 좋아했으하고 생각한다. 잘 살아야겠다며 사는 것보다 사는 것을 좋아하며 사는 편이 좋다.

연인들도 훗날에는 지금처럼 느리게 걷는 시간이 다시 찾아와 벤치에서 기억의 시선으로 호수를 바라보는 시간이 올 것이다. 놀이 기구와 달리 놓고 내리는 것이 없는지 살펴 챙겨갈 것이 없는 것이 삶이다. 그때 충분히 즐거웠다는 생각으로 아쉬움 없이 내릴 준비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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