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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Oct 11. 2019

행복의 순위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난주에 산 로또 복권이 1등과 숫자 하나만 틀렸단다. 그러면 3등이라고 했다. 우와, 축하한다 말하고 들어 보니 1등과 숫자 한 개 다른 것에 비해서는 당첨금이 생각보다 적었다. 123만 원이라서 세금 빼고 실수령액은 96만 원이라고 했다.


그 날 저녁 그 친구를 만났다. 이번 회차에서 1등 당첨금은 32억 원이었단다. "숫자 한 개만 더 맞았으면 너랑 이제 연락 안 하고 지내는 건데..." 하며 그 친구가 웃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적지 않은 돈이 생기긴 했다지만 그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로또 복권에서 3등에 당첨될 확률은 0.003% 정도 된다. 물론 1등 확률 보다야 훨씬 높겠지만 10만 명 중 3명의 확률이니 보통 운이 좋지 않고서는 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행운인데도 '번호 한 개만 더 맞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별로 기쁘지 않고 아쉬움만 가득하다. 왠지 그 친구가 나에게 저녁을 쏘는 날이 아니라 내가 위로주라도 사줘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청소연구소 유튜브

요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TV에서 자주 보게 되는 광고가 있다. 청소대행업체 광고인데 내용이 이렇다. 한 여자가 시무룩하게 거실에서 청소기를 힘없이 밀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가 화면이 바뀌며 그 여자는 밝은 표정으로 강아지를 앞세우고 잔디밭을 산책한다. 흐르는 멘트는 "청소할 시간에 강아지랑 산책하고..."

청소연구소 유튜브

한 남자는 세상 피곤한 얼굴로 테이블을 닦고 있다가 화면이 바뀌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드립포트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청소할 시간에 커피를 내리고..."라는 멘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집이 참 괜찮다. 널찍하고 창 밖 경치도 좋다. 그냥 살게만 해줘도 좋을 것 같은 집에서 청소 좀 한다고 표정이 그렇게들 안 좋다. 오히려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 표정이 더 행복해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이미 가진 것에는 금방 적응하여 당연하게 여기고, 가지지 못한 것에 눈길을 두고 욕심을 낸다. 비교해보면 항상 더 좋은 것이 있고 잘 된 사람이 있을 것이니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좋은 집에 살아도 좋은지 모르겠고 다만 청소기 밀고 다니기가 귀찮을 뿐이다.


얼마 전 친구 한 명이 부탄 여행을 갔다가 한층 맑아진 얼굴로 돌아와서는 그곳의 자연 풍경과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80만 인구에 1인당 생산이 3천 불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가난 나라 부탄. 그렇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1위라는 나라. 사실 행복에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행복에 대한 모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로또 복권 3등에 당첨된 그 친구는 매주 복권을 산다. 5개 조합으로 5천 원어치를 사는데 그때마다 항상 식구들 기념일로 만든 조합 하나는 꼭 포함시킨다. 그게 바로 매주 꼭 사야 하는 이유란다. 혹시 매번 사다가 한번 빼먹었을 때 마침 그 번호가 1등 당첨번호가 되면 얼마나 아까운 일이겠나 한다. 결국 복권 사는 목적 중에는 혹시나 스스로 뒷목 잡고 쓰러지는 위험을 피하는 것도 들어있었다.


어쨌든 그러다가 그 번호 아니고 자동 생성으로 응모된 번호에 걸려 3등이라도 당첨되었으니 잘 되었다. 다음엔 꼭 2등 하라고 행운을 빌어주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행복했다. 저녁 계산은 그 친구가 했다. 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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