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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Oct 27. 2019

바게뜨 빵 같은

'나를 견디는 시간' - 이윤주

이 에세이는 언뜻 보면 딱딱하다. 편집인이 직업인 이의 글이라는 선입관 때문인지, 표현이라던가 내용이라던가 문장이라던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글쓴이가 견뎌야 하는 세상이라는 게 그리 만만치 않게 거칠어서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스윽 긁으며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단단한 외피를 둘러야 했어서 그랬나.


그런데, 나름 딱딱한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씹어 보면 그리 딱딱하지 않은 바게트 겉면처럼, 건조한 듯 보이는 문장은 씹어 읽을수록 풍부한 맛이 나고, 글쓴이의 마음은 장난스러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보드라운 구석이 있었다. 마치 부드러운 바게트 빵의 속처럼.  


바게트 빵은 보통 다른 간식용 달달한 빵 들과 섞이지 않고, 고고하게 한 코너를 차지하고 꼽혀 있다. 가만히 보면 이 책도 그와 같이, 어설픈 감정의 고물이나 앙꼬를 품고 있는 다른 빵 들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간식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바로 쳐들어가서 얘기하고 있는 한 끼 식량이 될 수 있는 글이 담긴 책이다.

책을 보면서 글 속에 따뜻한 가을 햇살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세상에 대해 조금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다만 봄 햇살 같이 따사롭지만은 않은. 따스하기도 하지만 가끔 서늘한 느낌을 주는 가을 햇살 같은. 이해와 용납은 역시 다른 것이라서. 전체적으로 이십 대를 지나고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금의 경험과, 옛날 일들을 다시 돌아보며 드는 재해석을 담담하게 또 단단하게 풀어내고 있다.


가을 햇살이라면 아침 햇살 같다. 새벽 찬 기운을 덥히는 바게트 빵이라면 조금 더 부풀어 오르며 향기를 풍길만한. 삼십 대 후반이면 이제 가을이라 불러도 되는 시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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