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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Dec 08. 2019

경제학의 추억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고

고등학교 1학년 말이 되었을 때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정해야 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 나이에는 참고할 콘텐츠도 별로 없었기에 고민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향방이 달린 중요한 결정이었지만, 친구들도 다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당시 학교에 이과반이 문과반 보다 두 배 더 많았는데 친구들의 비율도 대충 그 정도 수준으로 배분되고 있었다. 나는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도 문과를 골랐다. 


선택의 갈림길에 도달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며 가는 선택의 방법도 있다. 좋아하는 방향으로 계속 추구하는 삶이 더 바람직하겠으나, 그렇다고 문과에서 더 배워야 하는 과목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미래에 내가 가질 직업에 대해 막연한 동경도 없었다. 다만 그냥 수학이 별로였을 뿐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지망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했다. 경제학과가 눈에 띄었다. 학구적인 분위기도 있으면서 현실적이기도 한 적당한 느낌의 전공. 주위 사람들도 굳이 반대하지 않고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그런데, 그때 아무도 나에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렇게 수학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이 많은 과목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랬다면 나는 아마 심각하게 진로를 다시 고민했을 터였다. 


이거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전공 수업에 편미분과 자연로그가 등장하면서부터 이과 수학의 정석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고, 경제 통계학, 경제 수학으로 시작한 전공과목은 수리 경제학, 계량 경제학을 넘어 미적분학과 선형대수학까지 넘나들었다. 동기 중에서는 수학과로 가서 그쪽 전공과목까지 수강하며 보충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어 이게 아닌데 생각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수학 관련 전공과목은 나에게 이해를 요하는 단계를 넘어서 점점 암기해야 하는 과목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물론 모든 과목이 다 그런 것은 아니어서, 그렇지 않은 교수님도 계셨다. "수학으로 경제를 풀어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저급이야. 그보다 조금 나은 것이 그래프를 이용해서 푸는 것이고, 가장 상급이 그냥 말로 해석하는 것이란 말이지." 그래 바로 그거지. 그 교수님의 강의를 따라다니며 얼마나 열심히 들었던가. 


그즈음의 일이다. 아마도 수학 관련 문제였을 것이다. 같은 기숙사에 있는 동기의 방에 안 풀리는 문제를 가지고 물어보러 간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옷을 다리고 있던 그 친구는 다리미 스위치를 끄지도 않은 채 한 손으로 옷을 다리면서 다른 손으로 손가락을 이용해서 그 문제를 풀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이 좌절했던 것 같다. 정말이지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그 무렵 교수님 한 분이 외국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우리 과로 들어오셨다. 아직 30대였지만 정식 교수로 부임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라서 그 교수님이 정말 천재라는 소문이 돌았고, 젊지만 화려한 학문적 업적에 대한 얘기가 펴졌다. 그다음 학기 그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수업 중 그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어떤 악마가 있어서 나에게 제안을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절반의 확률로 지금 보다 두 배로 머리가 좋아지게 해 주거나, 아니면 바보가 되어버리거나 하는 내기 말이죠.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 같으면 그 제안을 당연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과연 나 같으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저렇게 천재 소리 듣는 분이 얼마나 간절하면 저런 생각을 다할까 하는 생각에 순간 머리가 복잡했었다. 


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그 교수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인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느님이 그분의 능력이 필요해서 일찍 불러가신 것인지 아니면 혹시 악마와의 내기에서 교수님이 패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한계를 건드리는 천재들에겐 형벌처럼 지고 가는 고통이 있다. 한계는 근처에 도달해본 사람만이 안다. 이 책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에서 페트로스 파파크리토스가 죽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골드바흐의 문제를 부여잡고 한계에 고통스러워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천재도 바보도 아니라서 양쪽의 한계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현재의 내가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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