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이건 그 ‘상태’와 ‘흐름’을 같이 보야야 제대로 파악이 된다. 자연이나 사람 모두는 어떤 흐름 속에 존재한다. 흐름을 정지 화면으로 끊어놓으면 상태가 보인다. 계절이 겨울을 지나고 여름으로 가는 흐름 속에 봄이 있고, 여름을 지나 겨울로 가는 흐름 속에는 가을이 있다. 두 계절의 기후 상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봄은 따뜻하다고, 가을은 서늘하다고 느낀다.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에 따라 그 상태는 같아도 느낌은 많이 다르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중국을 봐도 그렇다. 일본은 GDP 성장률이 1%대 정도만 되어도 경기가 좋아서 젊은이들 취업이 잘 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반면, 중국은 올해 성장률이 적어도 5% 후반은 예상되는데도 6% 성장률이 깨져서 어쩌나 하고 침체를 걱정스러워한다. 이는 그동안 제로 성장, 잃어버린 10년의 저성장을 겪어왔던 일본과 그동안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중국의 경기 흐름 차이 때문에 그렇다. 성장률의 절대 수치는 중국이 훨씬 높더라도 체감하는 경기는 그와 아주 다르다. 우리나라도 역시 2% 언저리의 성장률에서 저성장과 급속한 고령화의 흐름 속에 있어서 그리 만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지금의 20대는 시기상으로 보면 샛길에서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 정도 되는 길로 진입해야 하는 상태다. 나름 자동차를 어렵게 구하고 기름을 채우고 잘 정비했다고 해서 나왔는데, 한참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도무지 메인 도로에 들어갈 수가 없다. 좁은 진입로에 여러 경로로 이미 많은 차들이 몰려 있고, 기존 대로가 이미 정체가 심한 데다 도무지 끼워줄 생각을 안 하니 진행이 너무 더디다. 그러다 보니 좁은 틈만 생겨도 차의 머리를 들이밀고 빵빵거리고 서로 들어가려 난리 속에서 양보와 배려의 마음은 이미 던져버린 지 오래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과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극도로 예민하고 지친 정신 상태에 놓인 것이 지금 20대의 현실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즈음 대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지내면서 학생들과 수업이나 개인적 공간에서 소통하며 느낀 점을 책에 적었다. 저자는 대학생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에 연대하기보다 좋은 직업을 날로 먹으려 한다며 반감을 가지고, 대학의 서열화를 인정하여 고등학교 때 공부 제대로 안 한 주제라고 입시 성적이 낮은 대학 출신을 은연중 무시하며, 기존 줄 세우기 룰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지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식하고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자신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 말하는 순간 ‘자기 계발의 패배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 ‘사회적 차별’을 수긍하고 자신이 남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정당화할 수 밖에 없는 고작 스무살 밖에 안 된 그들의 처지를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힘든 그들에게 자기 계발서를 권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멈추면 보인다며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읽으면서도 마음이 답답했던 그 책의 주인공인 대학생들이 이제 사회에 진출하며 ‘90년생이 온다’의 주인공이 되고, 이 책 ‘20대 남자’의 설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 ‘20대 남자’의 내용은 새롭지 않다.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에 놓인 20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수치를 통해 단순히 소개하는 책이다. 설문 문항은 객관식 점수에 따른 경쟁 체계에 순응하며 자라온 세대가 저성장 국면에 접하며 획득한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책의 성격상 설문 문항을 차갑게 나열하느라 분석 안에 온기를 담지 못한, 무척이나 건조한 책이다. 20대 남자의 얕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 응답을 가지고 '20대 남자들이 실제 그렇더라고요', '정말 놀랍죠', '설문 기법에 신경 많이 썼어요', '이렇다면 문제가 있네요' 식의 표현이 가득하다. 해결책은 진작 바라지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시선이라거나 설문 결과의 독특함에 있어 원인이 될만한 공통 이슈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만 보더라도 임원과 부장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다. 외부 강사들이 부장급 이상 모아 놓고 교육하는 자리에 서면 치우친 성비에 깜짝 놀란다. 여성에 대한 제약 조건도 많았고 그 때문에 기회를 찾지 못했던 과거 현실이 반영되어 그렇다. 최근에는 여성 관리자를 우대한다는 정책을 세우고 있어 조금씩 성비 불균형은 개선되고 있으나 아직 멀었다. 관리자 승진을 앞둔 남자 직원들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 시어머니는 예전 며느리 시절 당했던 것만큼 며느리를 혼낼 수 없고, 지금 부장도 예전의 부장만큼 일 안 하고 놀 수 없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흐름 속에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변화의 변곡점 구간에는 흐름과 상태에 대한 느낌의 차이가 커보인다. 20대 여성은 봄은 오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상당히 더디며 아직 추운 날씨 상태를 느끼고, 20대 남성은 온도가 조금씩 오르는 흐름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꽃가루 날리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 자체가 예민한 이들에게는 특히나 짜증이다. 집 안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밖으로 차를 몰고 나와보니 도로에 혹시 여성 전용차선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도 생긴다. 봄에 입을 옷이나 나들이 여유가 있거나, 도로가 잘 뚫린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결국 25.9%라는 극도의 반페미니즘 비율로 나타난다.
한정된 자원이라서 경쟁에는 유리한 쪽과 불리한 쪽이 항상 있지만, 그에 관계없이 흐름은 계속된다. 계절은 순환하고 기후는 변화하며 과학 기술이나 사회는 점점 진보할 것이다. 사회가 후진적일수록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어 배제하고 차별하지만 결국 사회는 진보하는 방향으로 면면히 흐른다. 세분화하면 개개인은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굳이 숫자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99.5% 같은 유전자를 지닌다. 그래서, 고대 벽화에 쓰여있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는 그 '젊은이'가 ‘신세대’, ‘X세대’, ‘밀레니얼’ 등으로 호칭이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이지 전에 비해 그리 특별하게 볼 것은 아니다. 굳이 '25.9%' 라던가 ‘20대 남자’를 나누어 특정화 할 것이 아니라, 50억 년 되는 지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만나 팍팍한 한 세대를 함께 공유하는 동지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