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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Feb 14. 2020

다르다는 것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너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세상에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같은 나무에서 피어난 꽃이나 이파리도 살펴보면 모두 조금씩 다르지. 같은 옷처럼 보여도 무늬 하나 실의 꼬임 정도까지 같지는 않고, 먼지라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단세포 생물도 똑같은 것은 없어. 시간은 사물을 변화시켜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이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물론 같지 않아. 세포는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고, 경험과 생각은 오늘의 나를 어제와 다르게 하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같은 것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래야 그들의 사회가 유지되거든. 하지만 때로 자기 필요에 따라 어떤 것은 명확히 구별해.

어쩌면 이곳 지구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잘 구별하게 된다는 뜻이야. 아기 때부터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만져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바로 생명에 위협이 되니까 말이야. 어린 아이가 되면 크기와 색, 모양을 더 잘 구별하게 되는데, 그 단계에서 지구인은 본능적인 구별의 통과 의례를 갖지. 사람 이전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을 이어받는 의식인데, 굳이 어렵게 이름 붙여놓은 에우스트렙토스폰딜루스나 브라킬로포사우르스 같은 이름을 구별하며 한 단계 성장해.


지구인은 공룡 극복 이후 보통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대강 일곱 살 정도 시기야. 보통은 류드밀라 행성 주민과의 공생 과정에서 그 때를 무사히 넘기지만, 그 과정이 제대로 안 된 몇몇 이들은 자기와 다른 것, 특히 힘이 약한 것을 괴롭히거나 배제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려 하기도 해.


데이지, 너는 이 곳 지구가 너희의 시초지임을 알고 있다고 했지? 그래서 고향을 먼저 뛰쳐나와 이곳으로 온 거라구 들었어. 나는 네 고향 청년들이 매년 이곳에 순례 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들만큼 지구인을 사랑하는 존재는 아마 없을거야. 평화로운 고향에서 구별되었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지구인은 마법 같은 매력을 발휘한 것 같아. 하지만 지구인과 다른 모습의 그들은 이 곳에서 대개 난민이나 불법체류자로 취급되었지. 그들은 류드밀라 행성의 기억을 멀리 떠나보낸 지구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어.

데이지, 너는 업신여긴다는 게 뭔지 잘 모를텐데, 그것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거야. 그들은 많은 지구인에게 무시와 괴롭힘을 당했단다. 그래도 그들은 그에 맞서 지구인과의 절대적 사랑을 통해 변화시켜왔어. 너는 혹시 소수라는 의미를 알고 있니?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 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란다. 지구인은 어린 아이일 때, 통과 의례를 거치면서 자신의 고유 숫자를 선택해. 그런데, 류드밀라 주민이 떠난 이후로 그들은 다투어가며 오로지 독특한 큰 숫자를 경쟁적으로 집어들었어. 그러다보니 고른 숫자들은 대부분 소수였지.


그 이후로 점점 지구인은 서로 공감하지도 나누지도 못한채 서로 다르다는 구별 속에 지냈어. 그런데, 순례자들이 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지. 그들은 저마다 작은 숫자가 쓰여 있는 조그만 금속 조각을 들고 왔는데, 순례자가 지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서로 숫자가 더해지는 현상이 생겨났어. 더 이상 숫자는 소수가 아니게 된거야.


지구인은 이제 그들 사이 공약수를 발견하는 법을 알게 되었어. 그들은 서로 만나 숫자를 나누어가며 점점 시초의 숫자로 접근했고, 소박한 공배수도 꿈 꿀 수 있게 되었지. 그러면서 몇몇 너희 고향 청년은 여전한 차별에도 돌아가지 않고 지구에 남았어. 그들 덕분에 지구인은 다르지만 서로 같은 것이 있다는 점을 점차 인정하는 법을 배우며 류드밀라 행성의 기억을 다시 찾고 있는 것 같아. 

데이지, 그런데 슬픈 소식이 있어. 지구와 너희 고향을 연결해주는 이동선이 곧 운행을 중단한다는 소식이야. 웜홀이 여러 개 발견되어 이제 워프 항법으로 운행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정기선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해. 그렇게 되면 이제 지구와 네 고향의 연결노선이 사라지니까, 너희들은 다시 시초지 지구로 순례오지 못할 거야. 앞으로 순례자들은 지구 대신 웜홀 터널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 사랑을 나누겠지. 데이지, 혹시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내일 마지막 운행하는 이동선 타는 것을 잊지않기 바랄게.


그런데 데이지, 다행스러운 것은 어딘가 마인드 도서관에서 우주비행사 희진의 손녀가 보관했던 외계생명체 루이의 연구 노트가 발견되었다고 해. 이제 그 노트로 다른 존재가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고 위하는지 대한 설계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면 이제 더 많은 지구인이 공약수를 서로 나누고 사랑으로 공배수를 꿈꾸는 세상이 가까와지겠지. 데이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돌아가. 너와 세상을 항상 지켜보며 응원할게.


안녕 데이지.



지구 어느 바닷속에서

재경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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