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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Nov 08. 2020

변곡의 시간

가을이 깊어 가며 출근 시간이 어두워졌다. 이제 집에서 나오는 새벽 시간은 밤과 다름없다. 나는 시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는데, 새들은 해에 맞춰 하루를 시작한다. 같은 시간에 나와도 여름에는 주위가 환하고 새소리도 들리곤 는데 이제는 서쪽 하늘에 그믐달만 적막하다. 연중 해 뜨는 시간은 아침 5시 초반에서 7시 후반 사이에 걸친다. 그 중간쯤 집에서 나오다 보니 낮의 길이가 변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이른 시간부터 실감하게 된다.  


볼록과 오목이 교차하며 곡선의 굴곡이 바뀌는 점을 변곡점이라고 한다. 자연과 사물에도 국면이 바뀌는 변곡점이 있다. 계절은 여름과 겨울의 정점 사이에 봄과 가을을 지난다. 변곡은 준비의 시간이다. 나무는 봄에 꽃을 피워 여름내 자라날 열매를 준비하고, 가을에는 낙엽을 떨어뜨려 겨울의 추위를 견딜 준비를 한다. 이제 가을이 깊어 기러기는 무리 지어 추운 곳을 향하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아 겨우살이 창고를 거의 채우고 있겠다.

 

변곡의 시간을 지내야 성장이 순조롭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 전 좌충우돌 사춘기를 보내며 성장하고, 곤충은 번데기 시기를 지내 애벌레의 껍질을 벗고 성충으로 자란다. 어떤 업을 하거나 누군가와 사랑을 하던지 각각 변곡의 시간을 잘 소화해야 일도 사랑도 점점 여물어 간다. 무엇인가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 안 되던 일도 변곡의 시간에 어느새 단계를 넘어 도약하곤 한다. 변곡점은 한계와 성장이 갈리는 지점이다.

출근길에  회사 근처 보도블록에 고깔 모양 표지를 둘러 막아놓고 '양생 중'이라 적어놓았다.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 어둠의 시간이 필요하듯, 콘크리트도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발자국을 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양생'이라는 말에는 돌본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 시기를 돌봄 없이 허투루 지내면 바닥이 제대로 굳지 않는다. 가끔 양생의 시기를 무심히 밟고 지나간 발자국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양생은 시멘트에게 변곡의 시간이다.


변곡의 시간은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물이 오목한 곳 고여있듯 사는 게 재미없고, 정체되었다 느껴지면 한번 마음을 볼록하게 하여 경사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물방울이 경사를 따라 만나고 모여 물줄기가 되어  굴곡을 따라 어딘가 도달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어디에 고이는지, 흐르는지, 변곡을 이루는지 알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따르는 삶이면 가장 좋겠지만 싫어하는 것을 피해 가는 도 괜찮. 고여있는 삶이 보인다면 한 번씩 들어 올려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한번 극단을 향해 보내보는 것. 그것이 한계의 인식이 될지 변곡의 계기가 될지 모르지만, 가끔 그렇게 해보지 않으면 평생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게 되지 않을까?

삶의 파동은 여러 굵고 가느다란, 길고 짧은 곡선들의 모임이다. 일상은 조금씩 변하며 어느 곡선은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다른 곡선은 이제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각각 파동이 겹치는 시간에서 변곡을 느끼고, 때로 마음을 들어 올려 변곡을 만들며, 그 변곡을 지키는 양생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지구시간에서 1만 년 전부터 지금은 간빙기라고 한다. 지구 역시 기나긴 빙하기와 또 다른 빙하기 사이에서 변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구도 나도 각자 변곡의 시간을 잘 가꾸며 성장하는 동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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