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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an 26. 2021

나를 위한 꽃집

집 근처에 꽃집이 새로 생겼다. 여느 꽃집에 비해 넓은 실내에, 다양한 꽃들 각자의 이름과 가격표가 달린 통에 담겨있는 것이 남달랐다. 들여다보니 한 송이씩 팔아서 가격도 생각보다 만만다. 천 원 정도에서부터 이삼천 원 수준이라서 가볍게 한두 송이 데려다 집에 꽂아두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꽃집 유리문을 보니 '나를 위한 꽃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통은 졸업이나 입학, 생일 등을 맞이한 이를 축하해줄 때, 또는 누군가에게 사랑이나 관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 꽃을 산다. 선물용이 아니 그냥 스스로 가지려고 꽃을 사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가끔 봄맞이 기분으로 프리지아 정도 꽂아놓는 외에는 그렇게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수국 작은 한 다발을 이천 원에 사 왔다. 꽃병에 꽂아놓고 작은 봉오리가 부풀어 꽃이 되는 모습을 보며 물도 가끔 갈아주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퇴근길에 종종 그 꽃집에 들르게 되었다. 수국이나 튤립에서 작은 장미나 라넌큘러스... 새로운 꽃들이 차례차례 한두 송이씩 집으로 들어와서 꽃병을 채우기 시작했다.

꽃의 한살이에 대해 생각했다. 꽃집에 있는 꽃은 본래 화훼농원에서 저마다 싹을 틔우고 자랐을 것이다. 온실에서 다른 꽃들과 섞여 자라다가 각자 뿌리에서 잘리면서 서로 다른 꽃집을 통해 제각각 삶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결국은 뿌리 없이 줄기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한부의 삶에서,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 가서 어떤 의미로 살게 될지 모른다. 다만 어느 상황이든지 물을 힘껏 빨아올려 꽃을 피우고 키울 뿐이다. 

영화 '소울' 중 태어나기 전 세상 (출처 : 네이버 영화)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영화 '소울' 에는 '태어나기 전 세상(Great before)'이라는 곳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태어나기 전 영혼은 다양한 활동으로 저마다의 성격을 형성하고, 준비를 다 마치지구를 향해 차게 뛰어내린다. 무한하지만 희로애락 없는 곳을 떠나 유한한 삶으로 여행을 떠나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꽃이 생명을 얻은 뿌리를 뒤로 하고 어딘가로 향하는 것처럼, 세상 어딘가에 우연히 자리 잡고 유한한 삶의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태어나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계속 꽃을 피운 채로 살 수는 없다. 꽃은 점점 시들어간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은 지나고 나서야 그게 그 시절이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오지 않음을 아쉬워하그 시절을 또 꿈꾸는 것은, 시든 꽃을 다시 피우려 하는 만큼 부질없다. 꽃은 시들어도 성장은 삶의 끝까지 계속된다. 어딘가 아직 덜 피어난 봉오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 오자마자 꽃을 보살핀다. 물도 갈아주고 잎도 손질하고, 시든 꽃은 잘 잘라 고이 종이에 싸서 버린다. 보는 것은 아무나 하지만 보살피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빵집, 술집, 밥집 같은 한 글자 먹는 집만 좋아했는데, 꽃집도 이제 슬며시 들어왔다. 


꽃은 언젠가는 모두 시든다. 어떤 일이든 삶이든 끝이 있다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기도 다. 줄기만으로 살아가는 모든 꽃을 응원하며, 어쩌다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꽃을 마지막까지 보살핀다. 꽃을 보살피면 또 나를 보살피게 된다. 그래서, 꽃집 이름이 나를 위한 꽃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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