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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Nov 19. 2021

긁는다는 것

유튜브에서 자전거 펑크 난 곳 때우는 법 영상을 보다가 생각이 났다. 자전거로 등하교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 자전거에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노래처럼 꼬부랑 노인도 우물쭈물하지 말고 알아서 피해야 하는 위력이 있었다. 차도로 달려도 차들이 두렵지 않던 시절, 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는 나에게 필수 교통수단이었다.


그때는 비포장길이 많아서 자전거에 펑크가 잦았. 피식 바람 빠진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포에 다니다가 그냥 장비를 장만해서 직접 집에서 때우기 시작했다. 준비물은 간단했다. 펌프, 본드, 튜브 조각, 사포면 끝이다. 작업 순서도 간단하다. 타이어에서 튜브를 빼내고 돌려가며 바람이 새는 곳을 찾는다. 튜브에 공기를 불어넣고 대야에 물을 채워 돌려가며 담그면 뽀그르르 공기 방울이 올라오는 곳이 보인다. 바로 그곳이 새는 곳이다.  


이제 잘 막는 일만 남는다. 요즘은 전용 패치가 있지만 그때는 헌 튜브를 타원 모양으로 잘라 붙여 썼다. 본드를 바르기 전에 사포로 구멍 주위를 긁어 거칠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틈새를 본드가 메우면서 잘 밀착된다. 공기 중에서 본드가 어느 정도 굳으면 자른 튜브를 눌러 붙인 후 타이어 안에 밀어 넣으면 작업이 끝난다.

유튜브 '바이크로이드' <자전거 펑크 때우기>

살면서 거친 길을 달리다 보면 가끔 마음에 구멍이 난다. 피시식 소리와 함께 기운이 빠지며 퍼져버리는 순간에는 자전거 펑크난 곳을 때우듯 마음에도 수리가 필요하다. 누군가 그렇게 퍼져 보인다면 작업을 해야할 시간이다. 물론 내가 그렇다면 스스로 때워야 하는 순간도 있다.


튜브에 바람을 넣듯 우선 기운을 불어넣는 일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하며 일단 기운이 부풀어야 어디에 구멍이 있는지 찾을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뽀그르르 방울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구멍 주위를 긁어야 한. 그냥 덮어 붙이면 나중에 그곳이 또 샐 수 있으니 왜 자꾸 긁냐고 좀 내버려 두라고 해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가려울 때 긁으면 시원한 이유는 긁은 자국으로 공기가 통해서 그렇다. 땅을 긁어 밭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효자손, 때수건도 그렇다. 적절히 긁어주는 것은 서로 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글과 그림과 그리움 같은 말도 '긁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종이를 긁어 글과 그림이 되고, 마음을 긁으면 그리움이 된다. 맨질맨질한 곳에는 뭔가를 쓰기도 그리기도 어렵고 쉽게 지워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거칠어지는 일이. 거친 것들이 만나 서로 비비며 만드는 마찰력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긁는 일로만 마무리되지 않는다. 밭을 갈았으면 씨를 뿌려야 하듯, 때를 밀었으면 씻어내야 하듯, 바가지를 긁었으면 풀어야 하듯, 구멍 난 곳을 긁었으면 때우는 일이 남았다.이제 마음 조각 잘 오려내어 그 조각을 구멍 주위에 덧대어 꾹 눌러 붙여야 한다. 그래야 다시 바람 빵빵하게 불어넣고 잘 달릴 수 있다. 직접 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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