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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22. 2021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만신창이

[자아, 친숙한 이방인] 독후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의 첫 소절이다. 소박하고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이어지는 노래는 외롭고 잘 알 수 없고 때론 당황스럽기도 한 자아에게 나직이 읊조리는 목소리로 마음을 울린다. 굳이 말하자면 자아 성찰의 노래라고 해야 할까? 나뭇가지마다 가시가 돋쳐 새들을 품지 못한 채 바람 불 때마다 찔러 보내야 하는 가시나무의 슬픔이 와닿는 노래다.


자아 성찰, 자아 발견, 자아 실현과 같은 말들을 자주 듣는다. 어렵지만 추구해야 하는 목표나 행복을 위해 갈고닦아야 하는 의무로 다가오는 말들. 하지만 자아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모른다면 그를 발견하고 성찰하며 실현하것이 가능할까?  속에 나무가 있다면 어떤 나무가 햇빛은 어찌 받아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혹시 마음의 장마철에도 잘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나? 그런 어려우니 많이 자아 성찰과 자아 실현이라고 하면 그냥 생활의 반성이나 인생의 성공과 같은 의미로 여기는 것 같다.


자아를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정의하면 수십 년 동안 같이 살아온 자아가 나에게 낯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이트 논문에서의 거울 일화처럼 혹시 내가 남이 되어 나를 만나 대화하고 같이 놀기도 다투기도 한다 생각하면, 재미있겠다 생각보다는 마치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을 때처럼 불편하고 거북스럽. 프로이트는 이를 '두려운 낯설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낯선 나의 자아는 대체 무엇일까?


책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다. 책의 제목은 '자아, 친숙한 이방인'. 철학자가 쓴 책이다. 얇은 책이지만 제목처럼 친숙하읽히지는 않았다. 예시와 설명으로 개념을 풀어가는 글이라면 예시가 읽는 이의 경험과 가까울수록, 개념에 대한 설명이 다정할수록,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차곡차곡 들어갈수록 내용이 더 잘 와닿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친절하게 다가가려는 목적으로 쓴 책은 아니지 싶었다.


자는 주로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자아를 설명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두려운 낯설음'은 빙산처럼 수면 위 작은 부분이 자아라서 수면 아래 잠긴 이드나 초자아가 불쑥 나타날 때 느끼는 낯설음을 말한다. 정신 분석은 이들의 상호 작용으로 생기는 자아의 부정적 측면이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어 낯설고 속이고 병들고 변하는 자아의 성질을 강조한다. 그래서 요즘 치유, 행복, 자존감의 가치를 강조하며 관심을 끄긍정 심리학과는 반대편에 다. 자아의 부정적 측면을 알아야 그 점을 경계함으로써 긍정적인 면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서 그렇단다. 그래서 주로 다중 인격, 친자 학대, 인종 학살, 편집증, 신경증 등의 병적인 예시와 연구 결과들을 자아 개념 설명에 많이 동원하고 있다.  


얼마 전에 어느 카톡방 온라인 학교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학력, 직업, 가족관계, 사회적 지위 등을 빼고 자기소개를 나누었다는 말을 들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나를 소개했을까 생각하니 순간 막막다. 그만큼 내가 나에 대해 친숙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앞장세웠겠지만, 나의 소개는 치장을 걷어낸 객관적 자아의 모습과 훨씬 가까웠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은 그와 다를 수도 다. 에 따르면 자아는 상상화된 일종의 가면으로서, 나르시시즘에 따라 주체를 소외시키며 주관적으로 망상적인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것 없겠다. 자아는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아를 경계하고 자아의 기만에 속지 말고 자기를 잘 파악하고 돌보며 탁월성을 갈고 닦으면 진정한 나를 찾아 행복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영화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중 로크, 쇼크, 배럴

가끔 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중국의 변검술처럼 나의 자아는 순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면을 휙휙 바꾸어 쓴다. 그러나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에서 나오는 자기 얼굴과 똑같이 생긴 가면을 굳이 쓰고 다니는 악동 캐릭터들처럼, 결국 가면을 써봐야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가면을 쓰기 전 본모습이 중요하겠다.


책의 결론만 놓고 보면 너희가 잘 해야지 하는 무책임한 자기계발서 느낌도 조금 들었는데, 글을 읽는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자아에 대한 긍정 심리학이나 진화론에 근거한 행복론에 너무 바싹 다가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요즘 들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자아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자아는 무엇인가 욕망하면서도 소외나 억압으로 상처 받는다고 한다. 혹시 초자아의 가시를 피해 정착하지 못하거나 웅크리고 숨어있는 자아가 있어서 그런 것인가. 보통 긍정 심리학이나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에 바탕을 둔 글에서 위로를 받아왔는데 이번엔 불안하고 불완전한 자아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스스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편안한 낯설음'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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