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없는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더위가 꺾이면서 한창이던 매미 울음소리도많이 누그러졌다. 생을 마친 매미가 나무 아래 누운 모습도 가끔 눈에 띈다. 매미는 땅 속에서 수년의 애벌레 시간을 보내고, 한여름에 땅 위로 올라와 한 달 이내의 짧은 삶을 살고 숨을 거둔다. 햇볕 아래의 시간 내내 수컷은 몸을 한껏 진동하여 큰 울음을 울고, 그 소리에 다가온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하면 암컷은 나무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둘 다 생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죽어서 나무 아래 누워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게 짝짓기란 이제 번식이 가능한 어른이 되었다는 상징이다. 짝짓기 이후 새끼들을 돌보면서 어른의 삶을 이어가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매미를 비롯한 많은 곤충에게짝짓기란 곧 삶의 끝을 의미한다. 고아로 태어나고 어른이 되자마자 죽는다니 어른 사람의 시각에서 그들의 삶이 참 안되어 보인다. 얼마나 몸을 떨어대며 속에서 증폭시켜야 작은 체구에서 저렇게 큰 소리를 낼까. 그런 에너지 소진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서 생을 빨리 마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짐승이나 곤충이 내는 소리에 대해 사람들은 그냥 '운다'라고 뭉뚱그려 말한다. 여우가 울고, 소가 울고, 닭도, 말도, 뻐꾸기, 매미, 귀뚜라미도 운다. 다른 동물은 몰라도 지상에 올라와서 매일 울다가 가는 매미의 삶에서는 운다는 말이 너무 적절해서 안타깝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생애 동안 해내야 할 일을 위해 매미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우는 소리가 아직 들린다.
지구 상의 모든 동식물은 생존과 번식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꽃이 예쁘게 피는 것은 사람들 보기 좋으라는 것이 아니고 벌과 나비를 모으기 위한 것이듯, 과일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것은 짐승들이 먹고 씨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이듯, 수컷 매미가 우는 것은 암컷 매미에게는 매혹적인 사랑의 노랫소리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다만 향기로운 꽃이나 맛있는 과일과 달리 그 울음소리의 코드가 사람과 맞지 않아 시끄럽게 들릴 뿐이다.
EBS 다큐프라임 '수컷들' 중 빅토리아 극락조 수컷의 춤에 다가온 암컷
EBS의 자연 다큐멘터리 '수컷들'은 지구 상에 사는 13종 수컷 새들의 짝짓기를 위한 필사적인 구애 과정을 보여준다. 몸을 치장하고 춤 연습을 하고 화려한 집을 짓는 등 온갖 준비를 다 하고 짝짓기 시장에 나가도 겨우 10% 정도의 수컷들만 암컷에게 선택받는다. 그 오디션을 준비하는 새들의 연습 과정이 너무나 열심이라서 눈물겹다. 사람을 포함해서 수컷들의 숙명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매미처럼 목숨 걸고 커다란 울음을 터뜨려야만 하는 곤충은 더 인정해주어야 하지 싶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중 한 장면 (사진 : 네이버 영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자기를 애타게 부르는 수컷에게 다가가는 암컷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 또한 비장하다. 우리에겐 일 년 중 한여름에 찾아오는 시끄러운 울음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위한 사랑의 순간이다. 매미 암컷도 본능적으로 자기가 알을 낳으면 죽게 될 운명임을 알고 있을 텐데도 몸이 자라 가지게 된 짧은 어른의 시간 동안, 사랑을 목놓아 울고 있는 수컷을 향해 만나러 다가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슬퍼진다. 갑자기, 죽음을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미들이 사라지기 전에 부디 사랑을 꼭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