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에스닉 퓨전 밴드 '두 번째 달'의 공연을 보았다. 2005년 데뷔 이후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단독 공연 무대에 올랐다. 밝은 표정으로 입장하여 다른 인사말 없이 곧바로 "그동안 뭐 하고 지냈니?"라는 제목의 흥겨운 연주곡으로 공연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찡해왔다. 그동안 못 보고 지낸 힘든 시기에도 모두 음악을 놓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나도 그동안 조금 힘들긴 했었지만 살다 보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반갑게 재회하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달의 음악은 주로 바이올린과 다양한 이국적 악기로 멀리 여행을 떠나온 느낌을 주는 연주곡들이 많은데, 그들은 이번 연말 공연의 제목을 'Autopilot'으로 지었다. 최근 싱글 음반의 제목이기도 한 'Autopilot'은 비행 중 자동조종 장치를 일컫는 말이다. 비행기가 구름 위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여 기장이 자동조종 모드를 실행시키면 비행기는 별다른 조작 없이도 목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은 공연에 온 관객들이 여행을 떠나며 Autopilot을 실행해 놓은 기분으로 편안하게 공연을 즐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바람처럼 공연 시간 내내 유쾌한 분위기의 음악과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살아가는 일은 종종 마라톤이나 운전에 비유되곤 한다. 구불거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방향이나 신호를 살펴 가며 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눈비가 내리는 것 같은 기상의 변화도, 달리는 다른 사람이나 차들도 챙겨보며 달려야 해서 더 그렇다. 그러다 보면 살아가는 일이 점점 미션 해결이나 문제를 극복해가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보다는 하늘을 비행하는 것으로 삶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구름 위로 올라 하늘을 날면 사방으로 길이 열려있다. Autopilot를 작동시키면 어떻게 가든 어디로 가든 삶은 제 길을 묵묵히 날아갈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기다란 구름을 만들듯, 그동안 하늘을 날며 지나온 흔적이 길이 되었고 그 하늘길을 따라 각자 지금의 자리에서 날고 있다. 그 길에서 택하지 않았던 방향이나 고도에 대한 궁금함 또는 아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겠다. 다만 스스로 그것을 소화시키는 방법이 비행에 대한 즐거움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삶이 비행이라면 지나간 모든 것은 풍경이었다. 비행기는 Autopilot으로 목적지를 향해 순항 중이며 창 밖으로 풍경은 계속 흐르고 있다. 가능하면 창문 가리개는 올려놓고 있는 편이 좋겠다.
이번 공연에서 그들이 연주한 곡 중에 '달리는 비행기'라는 곡이 있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가는 것인데 달리는 비행기는 뭐지? 하고 생각해 보니, 여행을 떠나며 활주로를 우두두두 달려 나가거나 목적지에 도착하여 게이트에 멈춰 서기 위해 속도를 줄이며 달리는 순간의 비행기가 있었다. 모두 가슴이 두근대는 순간들이다. 멀리 여행을 다닌지도 한참 되어서 그런 마음 설렘의 순간을 느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사는 일을 비행이라고 할 때, 그런 설렘의 시간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때는 조종간은 꼭 붙들고 있어야지. 그렇게 잘 달려야 나중에 Autopilot 도 할 수 있겠지. 그래야 언젠가 다음 공연에 갔을 때,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잘 지냈구나 하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과 즐겁게 재회할 수도 있겠지.
https://youtu.be/1sw9lIwpf3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