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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Feb 27. 2022

"기준!"을 외치는 일

위아래로는 물의 양이 좌우로는 물의 온도가 조절되는 수도꼭지로 후다닥 세수를 마치고 집을 나와, 카드만 갖다 대면 요금이 자동으로 결제되는 버스에 올라탄다. 부뚜막 큰 솥에 끓인 물을 대야에 붓고 찬물 섞어 세수하고 열 장씩 붙은 회수권을 하나씩 잘라 버스 안내양에 건네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제는 모르는 길 찾을 때도 지도책을 들추거나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리 편해져서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중고교 시절 체육 시간, 선생님이 한 친구에게 "너 기준"이라고 말하면 그 친구는 "기준!"이라고 외치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 다들 그 주위로 모여들어 앞뒤 양옆으로 팔 벌려 줄을 맞춰서곤 했다. 커가면서 보니 기준은 체육 시간에만 있지 않았다. 일상과 업무 대부분이 기준에 연결되었다. 전년말 기준인지 전월비 기준인지, 기준금리는 얼마나 오르는지, 0시 기준 확진자는 몇 명인지, 관리 기준에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의견의 차이도 말다툼의 시작도, 같은 것을 다르게 판단하는 것도 기준의 차이에 달려있었다.

강화도 보문사 눈썹바위 계단을 따라 오르면 좁은 길 양옆으로 색색 연등에 글자 소원들이 주렁주렁 려있다. 가족건강, 사업번창, 취업성취, 만사형통, 낙찰기원에 소송승소까지... 누구나 현재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일을 소원으로 빌고 있어서, 바로 그렇게 이루어지는 일은 많지 않겠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나 책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다들 여전히 행복의 기준을 일상의 눈높이 저 위에 두고 사는 것 같다.

   

물은 100도에 끓고 얼음은 0도에 언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 지구는 태양 둘레를 1년에 한 바퀴, 스스로는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 맞는 말 같지만 선후 관계를 살피면 바른말은 아니다. 물은 100도에 끓는다기보다는 애초에 물이 끓는 도를 100, 얼음이 어는 도를 0으로 기준을 삼았다. 해가 뜨고 지면서 아침과 저녁을 만들고, 1년과 하루도 지구가 공전과 자전으로 만든 것이다. 물이 100도에 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지구가 1년에 맞추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목표나 사는 방법에 행복이 깃드는 것으로 여기고 다른 이들과 기준을 맞추려고 한다. 해는 뜨고 달은 지며 계절 따라 온도는 변하지만 자연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안내 지도를 볼 때,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현위치 표시를 찾는 것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전체 지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쨌든 항상 기준은 나에게 있음을, 그래서 항상 손을 번쩍 들고 "기준!"이라고 외쳐야할 사람은 바로 라고 느끼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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