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Oct 24. 2022

'더 셜리 클럽' _ 박서련 소설

트레바리 '책은 나의 음악' 선정도서 독후감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아이들을 둔 두 엄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 중 감명 깊던 장면은 게이 아들을 둔 한 엄마가 성소수자 축제인 토론토 퍼레이드에 아들과 함께 참석하여 'I LOVE MY GAY SON' 손글씨를 들고 행진하며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에 가슴 벅차하던 모습이었다. 엄마와 아들은 현실 속에서 차별과 증오의 시선에 고통받지만 그런 따뜻한 연대에 힘을 얻으며 세상과 꿋꿋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소설 '더 셜리 클럽'의 주인공 셜리는 입국 첫날 호스텔과 트램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거절을 당하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기 좋은' 멜버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의도되었든 아니든 아시안에 대한 현지인들의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차별상처 받으며, 단순하고 힘든 워킹홀리데이 공장 일도 고달프다. 그러던 어느 날,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더 셜리 클럽' 할머니들의 행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인연을 맺으면서 소설 믹스 테이프의 'Track 01'이 시작된다. 그 순간 앞에서 말한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서의 퍼레이드가 오버랩되며 떠올랐다.


 믹스 테이프에는 세상을 잘 모르고 관계에도 미성숙했던 셜리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하여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며 존재를 찾아가는 성장 스토리가 담겨 있다. SIDE A에서 셜리가 셜리 클럽의 환대와 S와의 친밀함 속에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시작하여, SIDE B는 사라진 셜리의 연인 S를 찾는 여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전개였다. 차별의 상황과 퍼레이드라는 형태는 영화 속 장면과 비슷했지만, 기대에 비해 연대의 지점은 달랐고, 셜리가 그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도 내 마음과는 달랐다.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하는 '구별'무관심과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차별'은 명백하게 다르다. 차별의 아픔을 겪던 셜리가 클럽 할머니들에게 셜리라는 이름을 계기로 다른 이와 구별되어 공동체에 속한 안정감을 얻지만,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이 아닌 차별받는 소수자인 다른 아시안에게 그와 같은 따뜻한 손길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도라'라는 교육용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을 가진 이들의 클럽이 있다면 Racist인 도라 역시 그 안에서 똑같이 감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동문이라던가 해병대 동지회라던가 하는 것과 같은 무차별한 인연으로 얽혀 뭉쳐지는 것은 차별의 극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환대는 무조건적인 환대이며, 동질성을 나누는 이들 간의 환대는 그 안에 배제를 품고 있다고 했다. 전제 조건 없이, 초대하지 않은 방문객도 넉넉히 품는 환대 또는 연대의 모습으로 차별을 극복하는 경험이 보였으면 좋았겠다. 그리고 과연 '하루도 나를 심심하지 않게 해 주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S를 찾으러 '이런 나라도 사랑해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엄마만은 나를 이해해야 해요.'라는 생각을 하며 갑자기 여기저기 애타게 자취를 쫓는 셜리는 자신의 성장을 얻었을까? 한참동안 할 수 있는 연락조차 안하며 사라졌다가, 뒤쫓아온 연인에게 '내가 누구인지 잘 몰라서, 누구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것이 이기적이라서 그랬다'며 갑자기 울먹이는 S도, 도무지 나는 보라색 말이라는 게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자꾸 보라색 말이 들린다고 하는 셜리도 여전히 힘들었다.    


예전에 믹스 테이프를 정성스레 만들어 선물하던 20대 초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걸 공테이프라고 했다. 아무것도 녹음이 되어있지 않은 테이프. 그래도 회화용이 아닌, 조금 더 비싼 음악용 테이프를 구입해서, 그 당시 좋아하는 노래를 담는다고(목소리는 담지 않았지만), 시인과 촌장, 어떤날, 조규찬, 정혜선, 신형원, 동물원,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노래를 LP에서 따와 녹음하여 선물하곤 했었다. 1시간짜리 테이프라면 양쪽 면에 30분을 대략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애매하게 짧은 시간이 남으면, 1분에서 2분 언저리의 노래들인, 양희은의 '잠들기 바로 전'이라던가, 김창완의 '초야'나 '꿈'을 담았던 기억이 난다. 각각 노래 제목은 찌익찌이익 소리가 나는 도트 프린터로 출력해서 테이프 곽에 잘 접어 끼워서 넣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본다. 이 소설에 담긴 믹스 테이프의 양쪽 면과 Hidden Track에 감춰진 'Shirley Song'까지 꼼꼼히 들었지만 믹스 테이프가 내게 전하는 노래는 내 취향에서 조금 많이 벗어나 있어서 당황스럽다. 과거에 내가 정성스레 담아 선물한 노래를 받은 이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은 녹음하느라 걸린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었지만,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나 되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녹턴"_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