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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너에게 기울임

한 해가 기울어 가는 겨울의 어느 저녁, 기우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한 해가 기우는 것은 지구가 공전궤도 어딘가로 다가간다는 뜻이고, 달이 기운다는 것은 내가 달의 태양빛 반사를 잠시 피한다는 뜻이다. 우리와 아랑곳없이 달과 지구는 스스로 갈 길 가면서 한 해를 만들고, 한 달을 만든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들어가고, 연말에 송년회 하고 연초엔 다짐하고 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어떤 궤도를 돌고 있다 느낀다. 그 안에서 어떨 때는 기울고 어떨 때는 차오른다. 그래서, 가끔은 기울어도 괜찮다. 곧 차오를 때가 있다. 

기울여야 의미가 생긴다. 주전자는 몸을 기울여 기능한다. 그래야 화분에 물도 주고 커피도 내려 마신다. 술잔을 같이 기울인다. 기울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내가 가고 있는 길 아래 무엇이 있는지, 내 옷차림은 단정한지, 발걸음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가 도는 궤도에 어떤 이들이 같이 돌고 있는지, 혹시 내 주위의 궤도를 돌고 있는 이들은 안녕한지 모두 기울여야 보인다.


그래서 '기울이다'라는 말을 '관심을 기울이다. 정성을 기울이다. 귀를 기울이다.' 그렇게들 쓴다. 자세가 꼿꼿하고 기울일 줄 모르면 뭔가 쌓기만 하다 계속 무거워지겠다. 사는 것은 비우고 채우고 기울고 차오르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몸을 기울여 다가가고,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기울여 공감하고, 정성을 기울여 지켜보는 일이다. 지구가 자신의 자전축을 기울여 사계절을 만들 듯. 그래서 자연이 더 풍요로와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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