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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는 마음

by 그래도

집 화분에 여러 식물을 키운다. 뭐든 꾸준히 돌보는 편이라 그동안 키웠던 사슴벌레나 물고기들은 대부분 번식과 장수를 누렸고 지금 집에 있는 식물들도 대개는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중 해피트리는 크고 작은 화분에 두 그루를 키우는데 척박한 아파트 환경에도 나름 잘 적응하며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겼다. 가족 겨울 여행으로 물 주는 시기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돌아와 보니 유독 해피트리만 잎이 많이 말라 있었다. 깜짝 놀라 바로 물을 주고 며칠 지켜보았는데 잎을 하나둘씩 떨구더니 자기들이 무슨 낙엽송인 줄 아는지 볼 때마다 마른 잎을 바닥에 뿌려놓았다. 급기야 가지마저 건드리기만 해도 두둑두둑 꺾어져 떨어지니 내 마음도 같이 마르고 꺾어졌다. 자책감도 컸지만 '그래 이만하면 오래 같이 살았지' 하며 나무들과 이별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보름 정도 지나니 나무들이 조금씩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줄기 맨 윗부분에서 작은 가지가 어린 새싹처럼 조그맣게 올라왔다. 잎이 커지나 싶더니 갑자기 폭풍 성장하며 가지를 쭉쭉 뻗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장이 멈춰있던 아래쪽 줄기에서도 가지와 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성장이 어찌나 빠른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모두 제법 윤기 나는 잎이 풍성히 달렸다. 떨어져 버린 잎과 줄기 자극이 되어 새 삶의 의지가 나무를 다시 태어나게 한 듯싶었다.

예전에 독서클럽 <트레바리>의 몇 개 시즌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 시즌인 4개월 동안 매달 한 권씩 책을 읽고 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음악 관련 책을 읽는 모임에서 나이 또래 멤버를 만났다. 서너 개 주제의 독서 클럽에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많은 분인가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에게서 심장이 수 분 동안 멈췄던 경험을 들었다. 갑자기 쓰러지며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며 주마등처럼 과거가 스쳐 갔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빠 조치로 큰 후유증 없이 회복된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잘 다니던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출판사를 차렸다. 좋아했던 야구와 음악에 대한 책을 쓰고 읽는 삶이 재미있다고 했다. 죽의 문턱에 갔던 경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달 내가 참가하는 독서 모임에서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을 같이 읽었다. 모임 중에 우리는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을 빼고 무엇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수리, 표범, 고래 등이 등장했다. 대부분 이유는 강한 존재로 살다가 잡아 먹히지 않고 잘 살다가 '곱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생동물의 세상에서 그렇게 죽기란 어렵다. 동물에게 '자연사'란 결국 다른 동물의 먹이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리 강한 동물도 결국 하이에나나 까마귀 같은 존재로부터 점점 작은 존재들에게 먹히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오직 지구에서 히지 않고 죽는 유일한 존재인 사람게만 자연사에 대한 정의가 다다.

자연계에서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기도 어렵고 생명을 얻더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존 경쟁과 경계가 필수다. 항상 사주 경계 하거나 배고플 때마다 뛰어다녀야 살 수 있는 자연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 자체로도 찬란한 기쁨이다. 그날 독서 모임은 다음 생에서도 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만나자며 결론을 맺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전생에서 '다음 생에는 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라고 간절히 바랐던 돌멩이였거나 매미였거나 미나리였고, 그 간절했던 소망이 겨우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을 넘기면 몸을 이루었던 원자는 한동안 다시 흙이나 모래 또는 자갈을 전전하게 되지는 않을까?


생명에 위험을 겪 나면 삶을 다시 생각하고 감사하며 남은 삶이 오히려 풍성해지 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굳이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매일 아침 해가 뜨면서 나도 눈을 뜬다. 아침에 졸린 눈으로 욕실문을 열며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그럭저럭 잘 보내면 해는 저녁에는 항상 진다. 어라, 그럼 내가 이긴건가? 살아만 있으면 나는 매일 해를 이긴다. 그렇게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삶에 감사하며 하루를 항상 이기는 느낌으로 마무리하며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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