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노란색으로 몽글몽글 부풀어 올라 뜨거운 김을 쉭쉭 뿜어냅니다. 뚝배기에 담겨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식탁에 놓이지요. 저렴한 가격에 호불호 없는 식전 요리로 메뉴에 있으면 일단 주문부터 하고 봅니다. 고소한 향기를 참지 못하고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으면 허후허후 호허호허. 뜨거워 바로 넘기지 못하고 입안에서 식히는 시간이 필요한 그것. 그러다 언제 넘어갔는지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세상 부드러운 것. 바로 계란찜입니다.
계란찜은 일단 식탁에 오르면 곧바로 먹어야 합니다. 뚝배기에 담겨 있어도 생각보다 빨리 식어요. 조금 뜨겁다 싶어도 일단 먹기 시작해야 마지막 숟가락까지 따뜻하고 폭실폭실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뜨거워 보인다고 식을 때 기다리다가는 나중에 미지근하고 약간 탄 듯한 계란찜을 긁어먹게 됩니다. 커피나 차를 마실 때도, 아니 온갖 뜨거운 것들을 대할 때는 보통 그래요. 먹기 적당한 시기는 약간 뜨겁다 싶어도 일단 먹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후루룩 마시는 순간 입속에서 식으며 제맛이 나기도 합니다.
투자 업무를 오래 해왔어요. 일을 하다 보니 뭐든 딱 맞는 시기는 보통 없다는 것, 그리고 일단 조금이라도 사서 담아 놓아야 그다음 단계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사려고 하면 뭐든 좀 안 좋아 보이거나 아니면 좀 비싸거나 그래요. 좋은데 가격까지 참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은 잘 없습니다. 딱 맞지 않더라도 그냥 조금 사놓고 나면 뭔가 느낌이 달라져요. 더 주의 깊게 느끼게 되고 관심도 많아집니다. 길게 보면 할까 말까 하다가 했던 것이 후회는 더 없었던 것 같아요. 더 잘 사려고 계속 지켜보고만 있거나, 주저하다 놓아버리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살면서 뭔가 뜨거워 보이는 것은 많이 피했던 것 같아요. 뜨거움에 델까 봐 나름 자제력의 지혜를 발휘한다고 그랬나 싶어요. 돌이켜보면 뜨거워도 그냥 마음에 들일 걸 하고 후회하는 것이 많아요. 마치 뜨거운 계란찜을 놓쳐버린 것처럼요. 시작부터 너무 적당하면 금방 차가워질 수 있어요. 끌리면 일단 담고 뜨거움을 식히는 노력으로 좋은 온도를 찾아갈 기회가 있겠지요.
강화도에 있는 한옥에 가본 적이 있어요. 아궁이에 장작불로 불을 지피는 곳인데, 초저녁에 뜨겁게 불을 때 놓으면 온돌이 달궈져서 다음 날 아침까지 따뜻했어요. 따뜻함은 뜨거움을 지나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고 일도, 삶도 그래요. 뜨거운 시기가 있으면 따뜻함이 오래가는 것 같아요. 용기 있게 '까짓것 입천장 좀 까지면 어때'하며 푹 떠서 한번 입안에 넣고 허후허후 호허호허하면 돼요. 그렇게 일도 사랑도, 계란찜처럼. 뜨겁고 부드럽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