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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마음

by 그래도

가수 아이유는 가요 명곡을 리메이크한 '꽃갈피'라는 이름의 시리즈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다. 얼마 전에도 여섯 곡의 노래를 담아 세 번째 앨범 '꽃갈피 셋'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1996년 유영석의 노래 '네모의 꿈'이 있었다. 둥근 지구에서 사는 우리 주위에는 창문, 컴퓨터, TV, 칠판, 책상, 명함처럼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인데, 그 네모의 꿈 때문일지 모른다는 가사가 유쾌한 노래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 리메이크하면서 아이유는 원곡의 가사를 딱 한 군데 바꾸었다. 노래 앞부분에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을 보는 것이 네모난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모양도 마침 네모라서 가사에 딱 들어맞았다. 아마 조간신문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도 많을 것 같은 요즘이지만 나는 여전히 조간신문을 펼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네모난 건물로 출근하면 아침에 두 종류의 네모난 경제 신문이 네모난 사무실에 배달된다. 들춰볼 겨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잠시 짬을 내어 넘겨 보면 나름 펼친 보람이 있다. 폰으로 뉴스 기사를 보가는 클릭 수 늘리려는 제목에 낚이고 조금만 면을 잘못 건드리면 쇼핑 사이트로 넘어간다. 그리고 언론사마다 온통 비슷한 기사들이 넘쳐나는데, 그에 비해 종이 신문은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 다 준비해 놨어요'라는 분위기로 잘 차려진 밥상 같아서 좋다. 편집에 따라 기사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장씩 기는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세상 소식이 꽤 많서 재미있다.


요즘에는 관심사가 아니면, 알고 지내야 할 주변 일인데도 모르고 지내기 십상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늘기도 했지만 스마트폰이 유혹하는 갖가지의 짧은 영상이 나를 가두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관찰된 내 정보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교묘한 알고리즘은 의 주요 관심사를 찾아 뉴스나 광고로 쉴 새 없이 밀고 들어온다. 마트폰 앱 덕분에 길을 헤매는 일도 없어졌지만, 나의 생활이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미리 만들어진 길로 유도되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스마트폰 카메라 고장 나서 수리하러 간 적이 있다. 수리 센터를 검색하여 찾아갔는데 이리저리 조작을 해보더니 부품 교체가 필요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폰을 내주고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허전했다. 기다리면서 스마트폰 보는 습관 때문에 몇 번은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러나 폰 없이 보내는 한 시간 동안 불안감 속에서 해방감이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지는 폰이 아니라 다른 상점에 걸린 벽시계를 보고 알아냈고 수리 센터로 돌아가려다 어디쯤에 있었더라 검색도 화도 못하고 찾느라 헤맸지만 물어물어 찾아가니 괜찮았다.


헤매는 일은 흔히 피해야 할 일, 시간이나 인생 낭비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아름답고 귀한 것들은 정해진 길을 따라갈 때보다 헤매는 도중에 자주 발견된다. 여행을 가보면 그런 느낌을 많이 갖게 된다. 지나고 보면 삶에서도 헤매고 다닌 경험이 값진 마음의 재산이 된 경우가 많았다. 헤매다가 뚝 떨어지거나 갈라지거나 하는 고비도 맞을 때가 있다. 그런 단층들이 있어야 삶은 더 반짝인다. 금맥은 균열이나 단층에서 자주 발견된다고도 한다. 삶은 흐름이다. 가끔 고이고 가끔 빨리 흐른다. 기울기와 방향은 다르지만 그래도 흐르는 속에서 헤매는 결과나 과정은 길을 만드는 다채로운 재료가 된다. 헤매는 일을 뭔가 모자란 사람의 일처럼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리베카 솔닛은 그의 책 '길 잃기 안내서'에서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둘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라고 했다. 사실 길을 잃고 헤매는 데 다른 안내서는 없다. 수시로 길을 잃는 일이 생기겠지만 헤매는 발자국이 모이면 언젠가 길을 만들겠지. 그 길에서 또 길이 생겨날 것이다. 둥근 지구, 네모로 가득한 세상에서 길은 자유로운 모양이라 어떤 도형도 만든다. 그 길이 끊기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마도 길이 꾸는 또 하나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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