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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는 마음

by 그래도

벚꽃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출근길에 보는 여의도 벚꽃길 나무에 이제 초록이 점점 퍼져간다. 세상 어떤 꽃나무가 이른 봄 벚꽃이 펼치는 존재감을 이길 수 있을까? 불꽃축제처럼 꽃망울을 펑펑 터뜨리며 순식간에 하늘을 하얗게 뒤덮는다. 커다란 흰 꽃다발이나 펑펑 내리는 함박눈 속을 걷는 듯 벚꽃길에서는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부풀어 오른다. 조금 다급해지기도 한다. 이 시간이 오래가지 않음을 알기에 부지런히 사진으로 남긴다.


화려한 시절은 금방 사라지기에 더욱 찬란하다. 1년 내내 벚꽃이고 인생 내내 청춘이라면 그 찬란함을 알 수 없겠지. 벚꽃 잎은 서둘러 몸을 던지고 드라마 마지막 회처럼 여운으로 사라진다. 마음껏 빛을 드러냈던 시절이 지나면 열매 맺고 잎을 내고 떨구는 꾸준한 시간이 남는다. 바람과 비와 햇빛을 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삶, 자신을 아끼고 묵묵히 사랑하는 삶.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과 애순의 삶이 떠오른다.


동물은 잘 숨는다. 식물과 달리 드러내지 않는다. 벚꽃과 같이 환하게 드러내는 일은 동물에게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먹잇감이 되거나 먹어야만 하거나 양쪽 모두 서로에게 들킬까 조심스럽다. 그러다 보니 숨는 기술도 발달하고 보호색도 생겼다. 사람에게도 살기 위한 보호색이 있다. 자아를 지키는 방어막 같은 것. 안미옥 시인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할 때 바깥이 생겼다 나는 이제 꺼내놓을 것들을 꺼내놓는다' (안미옥 '조망' 중)라고 했다. 나도 잘 모르는 마음은 가끔 들어가서 살펴야 한다. 그럴 때 마음의 바깥에 테두리가 있어야 꺼낼 것들을 제대로 꺼낼 수 있다. 식물에게는 땅이 그 역할을 한다. 씨앗같은 마음을 지켜 잘 자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일.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그 일은 동물처럼 숨는 일이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다.


애매한 것은 굳이 드러내기보다는 가끔 애매하도록 그냥 놓아두는 편이 좋다. 씨앗이나 알뿌리나 봉오리, 또는 미처 자라지 못한 마음도. 언젠가 환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벚꽃처럼 화려하게 꽃으로 드러내는 마음이 되도록, 테두리 바깥에서 다정하게 기다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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