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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화를 잘 내는 사람

딸에게 화를 냈다. 버럭 소리 질렀다. 딸의 행동이 장난이라면 과하다 느꼈고, 의도였다면 나쁘다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내 폭발로 둘 다 움찔 당황했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돈은 내고 나면 이미 내 것이 아니다. 휙 사라진다. 화는 다르다. 내고 나서도 남는다. 마음속에 칭칭 감겨있거나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래서 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풀리는 것이다. 실타래나 얼음이 풀리듯. 화를 매고 집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시간은 내게 어김없이 후회를 데려왔다. 후회가 열 일하는 동안 화는 점점 풀려가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화의 감정은 공격보다는 자기 방어를 위한 것이다. 화는 자아가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과 같은 것이라서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소통 수단으로 생겼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되거나 자책감을 키우거나 해서 자아에 상처가 커지고 몸의 균형이 깨져 생기는 병을 '화병'이라고 부른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 편람에 'Hwabyung'이라 등재되어 있는 한국문화의 독특한 질환이라고 한다.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 화를 내는 것에는 방향성이 있는데, 그 방향이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것을 '화풀이'라 한다. 화를 일으킨 대상과 소통으로 푸는 것이 불가능할 때, 화는 종종 다른 방향으로 뿜어진다. '화풀이'는 무리 생활하는 동물 세계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다툼에 지고 가만히 있으면 취약 개체로 인식되어 다른 개체에게 또 공격을 받게 되므로 더 약한 개체를 공격하여 자기는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그 기억이 유전자에 새겨져 인간에게 화풀이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세상의 화풀이도 보통 약자를 향한다. 마녀사냥, 전쟁, 테러, 인종청소, 왕따 같은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된다.


마음밭을 가꾸어 애초에 화의 싹이 올라오지 않게 사는 것이 좋다. 그래도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를 내지 않고 참다 보면 화병이 날 수 있고, 여기저기 분출하는 화풀이도 싫으니 결국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적절한 소통의 수단으로 화를 '잘' 내야겠다. 그러면 '화 잘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으면 화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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