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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2. 2019

강조한 것 챙기기

얼마 전 집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바닥에 붙어있는 신기한 작은 광고를 보았다. 


“      를     로 배우고 싶다면 010-xxxx-xxxx”


이건 뭔가? 두 부분 단어들이 비어있다. 아마 광고하는 입장에서는 중요한 단어들이라고 붉은색으로 강조해 놓았을 텐데 그 글자가 빛이 먼저 바래서 사라지고 검은색 글자들만 남았다. 그 결과 호기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래서야 광고 효과는 없지 싶었다.   

이런 경우들을 종종 본다. 특히 버스 안이나, 건물 벽에 붙은 오래된 벽보에 있는 경고성 멘트들이 주로 그렇다. 강조해 놓은 글자들이 먼저 사라진다. 예전에 서촌에 갔을 때 어딘가 어린이집 벽에 붙어있던 “어린이집 주변은      입니다.”라고 당당히 쓰여 있는 퀴즈 같은 벽보도 그랬었다.

가끔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집에서 무엇인가 뭔가 중요한 것인데 테이블 위나 소파 옆 같은데 굴러다니고 있어서 ‘아, 이건 중요한 것이니까 잘 두어야겠다.’라고 어딘가에 치운다고 잘 놓고서는 정작 내가 어디다 보관했는지 잊어버리고 전에 굴러다니던 곳만 애꿎게 쳐다보며 한참 뒤적거리며 찾게 되는 경우 말이다.


살면서 밑줄 쫙 그어놓고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누가 혹시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뭔가요? 혹시 못 지키고 있어서 아쉬운 것은요?”라고 물어본다면 답으로 나올 단어들이 보통 그렇다. 너무 중요해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붉은 글씨로 강조해 놓고서는 어느덧 빛이 바래어 희미해지도록 의식하지 못하는 단어들. 우리 일상의 문장이 급한 명사들, 바쁜 동사들, 화려한 형용사들로 빠르게 돌아갈 때, 구석으로 밀려나 조용히 빛이 바래고 있는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바쁘더라도 가끔 숨을 고르고 영화 속 대사처럼 ‘뭣이 중한디? 뭣이 중허냐고?’라는 말에 답해보고, 답으로 나오는 몇 개 단어들을 다시 진하게 색칠하는 시간이 있어야겠다.


주) 광고 내용은 원래 ”[영어]를 [언어]로 배우고 싶다면”이고, "어린이집 주변은 [금연구역]입니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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