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작은 미술관

예술은 또 다른 언어다.

by 하임

하얀색과 아이보리색이 어우러진 직사각형 2층 건물은 마치 작은 백악관처럼 보였다.


정문과 창문은 모두 커다란 아치형으로, 유럽풍 연회장을 떠올리게 했다.

정문에서 입구까진 하얀색 대리석으로 이어져 있고, 대리석이 깔려 있지 않은 곳은 잘 정돈된 초록색 잔디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대부분이 오래되고 낙후된 카오산 로드의 다른 건물과는 대조적이다. 턱시도나 파티용 드레스를 입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할 것만 같은 이 고급스러운 건물은 '반 차오프라야 아트 갤러리(Baan Chao Phraya Art Gallery)'다.


싼티차이 프라칸 공원 옆에 있는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땐, 외국 정상이나 부자들이 파티를 하는 연회장 혹은 고급 레스토랑일 거라 추측했다.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성역 같은 곳일 거라 단정 지었었는데, 방콕의 미술관을 검색하다가 이 건물의 본래 용도를 알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하얀색 제복과 하얀색 정모(해군 부사관들의 모자와 닮았다)를 쓴 덩치 큰 아저씨가 정문 옆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나처럼 반팔 티에 청바지 입은 사람은 입구에서 제지할 거 같은 분위기의 그를 본 순간, 나는 여기가 그곳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가 맞는데..

나는 긴장감을 애써 감추며 그를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정문에 가까워질 무렵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모자 아래 근엄한 표정은 금세 온화한 미소로 바뀌었다.

싸와디캅.

그는 환영의 인사와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입구에서부터의 긴장은 금세 풀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싸와디캅, 코쿤캅.으로 그의 친절에 감사를 전했다.



내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바닥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대리석으로 얼굴이 비칠 만큼 반짝반짝 광이 났고, 화이트톤의 벽과 천장에서 세련미가 느껴졌다. 조명은 대부분 간접조명이라 아늑했고, 작품마다 개별적인 하얀색 핀조명이 비추고 있어서 관람의 집중도를 높여줬다.


그에 반해 2층의 바닥과 문은 나무였다. 벽은 흰색이고, 외부에서 봤던 커다란 아치형 창과 복도의 유리천장으로는 자연광이 들어오고 있었다. 2층은 흰색과 따뜻한 나무 색의 조화로 1층의 세련미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1층이 유럽이라면 2층은 유럽풍의 태국스러운 분위기랄까.

내부를 가득 채운 잔잔한 재즈음악은 애피타이저처럼 관람욕을 돋웠다. 모든 환경은 관람객이 오로지 작품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었고, 에어컨의 온도와 습도는 카오산 로드답지 않게 굉장히 쾌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작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니깐. 예술작품만큼 민감한 나에겐 천국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작품과 에어컨,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방콕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리라.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작품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안내문에 따르면 보통 1층은 일정 기간마다 작품이 바뀌는 순환 전시 공간으로 그림. 사진, 실험적인 예술 작품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반영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2층은 영구 전시된 그림과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1,2층 모두 태국 예술가 티나콘 카손수완(Tinnakorn Kasornsuwan)의 작품이 전시된 듯했다.


벽에는 여느 전시장보다도 빼곡하게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전시장의 한쪽 구석에선 작가와 지인들이 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 사이로 작가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그 사진 속 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무리 속에서 보여서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땐 현지어를 할 줄 모르는 게 너무 아쉽다. 작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 용기는 있는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다. 짧은 영어로는 원하는 대화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지난번 파리의 국제 사진전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 작품 속에서 특별한 의미로 추측되는 피사체가 있어서, 작가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도로 연출한 건지 너무 궁금해서 대화를 시도했었지만, 대화의 시작만 창대하고 끝은 안타까움의 폐허로 남았다. 언어의 한계는 생각보다 높았고, 결국 나는 나만의 추측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었다. 차라리 물어보지를 말 걸 하는 아쉬움만 남았던 기억.

사실, 작가의 의도를 꼭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말이 아닌 작품으로 소통하는 게 예술의 묘미 아니겠는가. 나는 여우의 신포도를 꿀꺽 삼키며 다시 작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시된 작품들은 시리즈물 같았다.

각 작품마다 명확한 형태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자 같은 캐릭터가 있고, 그 주위엔 몇 개의 선이 둘러싸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선은 캐릭터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려져 있다. 보통 검은색의 불분명한 형태는 과거 혹은 대상의 지난 흔적을 의미한다.

제목이 궁금해서 작품의 왼쪽 아래를 살펴봤다.

'무제'.

제목이 없다.

안 그래도 난해한 작품인데 '무제'라는 제목을 본 순간, 마치 거리에서 만난 미지의 인물과 미지의 언어로 한참 동안 대화를 시도하다가 급하게 헤어지는 허탕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만난 기념으로 내가 한글 이름을 지어드릴게요.

'있었는데 없었다'

'흔적은 남았다'


'무제'도 여러 개 있었지만, 어떤 작품은 QR코드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설명은 맨 마지막에 보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설명을 듣고 보면, 정답에 국한된 좁은 시선으로 작품을 재단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말한 상징적인 것만 확인하면 나머지는 관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모르면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작품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 반복해서 살펴본다. 선과 면 혹은 종이의 질감까지 유심히 노려본다. 예술 작품은 대개 사소한 것까지도 작가의 의도를 대변하니깐.

그렇게 유추하다 보면 내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고, 나름의 결론이 내려졌을 때 QR코드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내가 내린 결론과 대조해 본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본래 의미를 확인하거나, 작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관람자만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이다.


관람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눈에 띄는 거대한 작품을 발견했다.

좀 전에 봤던 것들과는 대조적으로 바깥이 검은색이고 캐릭터가 하얀색인 수많은 형체들이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처럼 생긴 것도 있고, 새, 나무, 고래 혹은 외계인 같은 것들도 보인다. 이 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마치 꿈속의 풍경같기도 하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떠도는 수많은 잡념 혹은 상상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희미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온통 검은색과 흰색 속에서, 혼자만 다양한 색을 가진 독특한 무엇. 해마 같기도 하고, 누워있던 산을 세로로 세워놓은 거 같기도 한, 독특한 형체의 옆엔 가까이 봐야만 겨우 발견할 수 있는 빨간 선이 보인다. 그 선은 어디론가로 쭉 뻗어 나가서 앞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에 연결된다.

보통 영화를 보면 과거 회상 장면은 흑백 영상으로 연출되고, 현재를 컬러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니깐, 현재와 현재를 과거의 무언가로 잇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유추해 봤다. (믈론 괴상하게 생긴 건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작품의 옆에 있는 QR코드에 조심스럽게 폰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겨우 풀어낸 어려운 문제의 답안지를 맞춰보듯 그 내용을 살펴봤다.

설명은 그림의 복잡함에 비해 간단했다.

풀어서 해석해 보면, 지금의 우리 모습은 과거부터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과 현재의 새로운 것들의 상호작용이며, 성별, 연령 혹은 환경에 따라 다른 각자의 경험과 이야기들이 현재의 다양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답안지를 확인하고 다시 한번 살펴보니, 괴물처럼 보이는 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그런 존재 같았고, 형체를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모습들은 현재의 우리를 말하는 듯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빨간 선은 과거의 경험과 이야기를 현재로 이어지게 하는 매개체 같다.

내 예상과 대조해 보니 꽤나 정확했다. 마음 같아선 작가에게 이 채점지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혼자서 "미술관 좀 다녀본 보람이 있네" 뿌듯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 작품의 설명을 보고 다른 작품들을 보니 이제는 아까보다 작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에 같은 그림 형식으로 호랑이가 들어가고 곰이 들어가고, 갓이 들어가고, 3.1 운동이 들어가고, 일제의 총칼이 그림 속에 있다면 다른 과거를 경험한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깐.

다만, 서로의 경험과 언어는 달라도 누구나 갖고 있는 과거의 경험이 잉태한 감정, 늘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의 고단한 삶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공통점이다.

이렇게 다르지만 겹쳐지는 교집합 같은 인류 공통의 감정이 예술을 이해하게 하는 힘이다.

일종의 상형문자라고 할까.

작가의 모국어를 알지 못해도, 심지어 유형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예술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언어로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



1층을 구경하고 2층에서 나머지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눈에 띄는 독특한 작품을 발견했다.

이전의 추상적인 작품들과 대비되는 가장 직설적인 그림.

태양이 이글거리는 맑은 하늘 아래 빨간 새의 머리 위에만 구름이 올려져 있다.

구름 아래 새의 눈엔 눈물이 마치 먹구름의 비처럼 흘러내린다.


이 작품은 작가의 설명을 볼 필요조차 없을 만큼 바로 마음속으로 강하게 들어왔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쨍쨍하고, 사람들은 웃고, 모두들 행복한데, 나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던 날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그림이다.

하늘이 아무리 맑고 푸르다고 내 마음까지도 꼭 그런 건 아니다. 나의 날씨는 내 마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뿐, 세상의 날씨와는 무관할 수 있다. 마치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다음 날. 궤도를 이탈한 달이 된 듯한 기분처럼. 모든 것은 어제와 같은데, 같은 공간 속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내가 된 느낌.

예전부터 내 머릿속으로 생각해 왔던 이미지를 작가가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미술관을 관람하는 이유 중 하나다.

100가지 작품 중에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하나의 작품을 만났을 때의 그 강렬함이란.


나는 한동안 이 그림 주위를 서성였다.

내가 이 그림을 그렸다면, 배경의 채도는 높이되 빨간 새는 무채색으로 그려 감정의 대비를 극대화했을 거라 상상을 했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는 한국도 태국도 아닌 제3의 세상을 여행 중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가장 좋은 여행지는 풍경 좋은 해변도, 역사적 상징물 앞의 관광지도 아닌, 마음으로 공감하고 반응하는 내면의 여행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미술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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