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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Nov 01. 2020

가을, 새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까

만추에 나무를 자르는 사람들

만추. 가을이 농익었습니다. 농익은 가을을 즐기고 싶어,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공원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남겼습니다. 눈만 돌리면 천연색의 옷을 입고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네요. 겨울이 오기 전에 완숙미를 뽐내고 있습니다.

옹기종기 공원의 가을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이 저희 아파트에도 왔었습니다. 왔었죠. 그런데, 빨리 가버렸어요. "응? 무슨 말이지?" 이렇게 말씀하실 분들을 위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파트의 잘린 나무들


가을 나무가 노랗고 빨간 옷들을 입고 한참 색깔을 뽐내고 있던, 지난 금요일 아침에 전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창밖을 내다봤더니,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더라고요. 그냥 가지치기 수준이 아니라, 그냥 나무 몸체를 댕강댕강 자르고 있었어요.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아파트 승강기 앞에 붙어있던 전지작업 공지문이오.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중앙의 인도는 나무가 우거져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봄에는 온갖 꽃들이 핍니다. 목련과 벚꽃, 그리고 5월에는 라일락 향이 그지없지요. 여름이면 우거진 그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매미소리가 하늘을 찌릅니다. 가을이면 또 어떻고요. 앞서 보여드렸던 공원의 낙엽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색을 뽐냅니다. 그런데, 그 색을 아파트의 주민들이 즐기기도 전에 잘라내다니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데, 이 사람들에게는 그냥 이게 일이네요. 뭐가 잘 못되었냐는 식이에요. 자기 집 앞마당에 나무라면 한참 아름다운 이때에 댕강댕강 잘라낼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어찌해야 할까요. 아파트 주민들이 술렁술렁 대며 전화로 민원을 넣어도, 주민들이 내는 관리비로 월급을 받으시는 분들이 오히려 당당합니다. 아니,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동 대표들에게 승인을 받았다나, 말았다나 행정적인 것만 이야기하네요. 날이 추워지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고, 나무에 독이 있다고, 나무가 너무 크게 자랐다고.. 뭐 이런 이야기들만 하면서 둘러댑니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말만 하네요. 구청의 보조금을 지원받아서 하는 전지 작업이라는 데, 돈을 주는 데 관리는 하지 않네요. 이렇게 예산이 낭비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저, 아쉬움만 남습니다.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나무를 잘라내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토요일은 작업자들도 쉬는지 조용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갔더니, 새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닙니다. 까치들은 정신없이 "깍깍 깍깍" 거립니다.  어제까지 앉아서 날개를 쉬던 나무가 몽땅 잘렸으니 울기라도 해야겠죠.


저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까요. 가능하다면 마음 한편에라도 앉히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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