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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렬 Apr 09. 2021

너를 보내고

효진이를 사랑했던 모두에게

안녕하세요, 효진이 남편 지승렬입니다. 지난 주 이맘 때 효진이와 나눈 대화가 아직 너무나도 생생한데, 현실의 시간은 아무일 없었던 듯 야속하게 흘러갑니다. 장례의 마지막 발인날은 너무 맑은 하늘에 햇빛이 반짝였습니다. 볼에 내려앉은 햇살이 마치 효진이의 따뜻한 온기와 빛났던 그녀 삶의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효진이를 정말 많이 사랑했습니다. 2007년 12월 처음 만난 이래 저희는 이 세상 그 어느 짝보다 깊이 교감했고 서로를 사랑했으며 밑바닥의 아주 하찮은 것부터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가치있고 고결한 행복과 소소하기 짝이 없는 시시콜콜한 즐거움들까지, 모든 걸 함께 나눴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때로 내 모습이 부끄럽고 미워져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던 순간에도, 그런 모습조차 끌어 안아 서로를 토닥일 수 있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두 딸과 함께 이 세상 그 어느가족보다 더 친밀하고 화목하며 서로에게 충실했던 우리였다 확신합니다.


그런 저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작년 3월말 효진이가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제 안에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겐 효진이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겐 어쩌면 미안한 얘기지만, 누군가 한없이 조건없이 내 전부를 사랑해준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그녀 외에 있었나 싶었습니다. 어릴 적 어느 순간 이후 누군가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나의 삶을 나누지 않은 채 나만 보며 살아왔던 제게, 효진이는 따뜻한 빛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걸 온 마음으로 사랑했습니다. 나의 우주였던, 그런 효진이를 이 땅에서 먼저 데려가실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저를 짓눌렀던 커다랗고 한없이 무거운 쇳덩이 같았습니다.


지난 한달. 우리 모두는 간절히 기적을 바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삶을 돌이켜 다시 주님을 부르고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와 기도로 주 앞에 다시 섰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매일 새벽 무릎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하루하루 주의 은혜를 구하며 힘겨운 나날들을 이겨내려 애썼습니다. 그러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말씀하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삶의 목적, 존재의 이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천국, 광야, 훈련, 사랑, 기쁨, 믿음, 감사.


그 사이 제가 다 알지도 못하는 수 없이 많은 분들의 기도가 쌓이고 쌓였습니다. 효진이의 병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간증도 무수히 많이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부터도 깨졌던 관계와 멀어졌던 마음들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됐습니다. 기적과 소망에 대한 기대가, 두려움 가운데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주 빠르고 급하게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그분만의 방법으로 효진이를 데려가셨습니다.


효진이의 호흡을 거두신 직후 제 마음에 원망과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간의 노력은 무얼 위함이었나, 모두의 간절함은 무엇이었나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효진이가 제 마음에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붕아 나 괜찮아, 여기 천국에서 너무 평안하고 행복해.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천국은 생각했던 아바타의 그곳보다 더 아름다워. 그러니 너무 마음아파 하지말고 화도 내지 말아줘. 그거 나 원치 않아.’

효진이는 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주변 친구들에게 넘치는 에너지와 빛나는 웃음으로 그녀가 가진 사랑을 한 없이 전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아이들을 보거나 조카들을 볼 때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까 싶을만큼 하이톤의 목소리와 그 예쁜 눈에 사랑을 실어 보여주었습니다. 또 그 커다란 손으로 제가 생각하는 몇 배 이상으로 늘 주변에 베풀고 또 베풀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었으니, 그것은 진심이 아니고선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냐 물었던 제게 하나님은 효진이가 보여준 사랑, 그보다 더 큰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3년,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마치 70년을 압축한 만큼 밀접하게 그리고 많은 것들을 서로 나눠 그런지, 제 마음에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앞서, 이제 마음의 소리로 효진이의 생각이 울립니다. ‘오붕아 더 사랑하기로 했잖아.’ ‘오붕이 또 오해하고 외면하네.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사람의 마음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지?’
‘지금 한 마디 더 건내줘. 위로하고 안아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늘 가지고 있었고,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봤고,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였던 효진이가 이제 저에겐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저만의 특별한 메신저처럼 여겨집니다. 이제 모든 상황과 순간에 효진이의 사랑의 마음이 제 안에 하나님의 음성을 대신해 바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천국에서, 제 마음 안에서 모든 걸 보고 이야기하니,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도 그 어떤 것도 전 이제 대충 할 수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게는 조금 두렵고 무서운 곳으로 생각됐던 천국은, 이제 꼭 가야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의 씨앗을 뿌려 많은 이들에게 하늘에 소망을 두게 한 효진이가 받은 상급만큼, 저 또한 받아야 하기에 이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이 남은 저의 삶의 소명입니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던 토요일, 효진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말 할 수 있는 힘을 얻어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하나님만 붙잡고 사랑하며 살아가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아빠도 엄마도 아닌 하나님이시란 이야기도 했습니다. 무섭고 떨리는 두려움의 시간 속에서도 늘 담대히 하나님만 바라봤던 효진이였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기적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특별한 존재였던 효진이는 이제 더 이상 곁에 없지만 그녀의 고결한 믿음과 베푼 사랑의마음을 본 받아, 그 사랑을 나누고 그녀가 뿌린 씨앗이 잘 자라 열매 맺도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목도한 제자들이 죽기까지 충성해 예수의 이름을 전해 오늘 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듯, 내 자신보다 더 중요했던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각자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사는 것. 이게 진짜 기적이지 않을까요.

매 순간 사무치게 그리운 건 언제쯤 사그라들지, 그러기는 할런지 알수 없지만, 풀어가야 할 숙제도 산더미만큼 많지만, 효진이가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인 온유, 유하와 함께 오늘도 또 오늘 하루에 족한 은혜를 구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사랑과 믿음의 효진이를 기억합니다.

2007.12.17 - 2020.12.05
그리고 영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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