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을 같이 생각해 봤는가?

26년 1월 회고

by 로이의 아재라이프

1. 건강


매년 연말마다 번아웃증상은 왔으나, 휴가 겸 여행으로 쉬면 어찌어찌 회복되었다.

올해는 아니었고.

26년 1월 1일부터 업무 시작했는데, 그냥 쓰러졌다.

뇌가 shutdown 되는 걸 넘어서서,

사고가 아예 멈췄고, 집에 오면 잠을 잤다.

내 의지와 상관이 없었다.

몇 년 치 과로로 인한 것은 내 의지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력은 남아도는데 체력이 먼저 쓰러졌다면,

이번엔 그냥 정신력도 체력도 강제 종료되었다.


포기했다.

누워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생각을 이어나가려고 애쓴 거 같다.


몸이 아프면 수액도 맞을 때도 더 아프다.

수액도 몸이 너무 아프니 맞을 수가 없었다.


24일쯤 쉬었을까. 잠만 자다 이제 바닥 찍고 10% 회복될 때쯤 감기가 걸렸다.

25일이 생일이었는데, 그냥 잠만 자다 끝났다.

생일케이크와 미역국은 무슨... 먹었으면 아마 다 토했을 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목상태 보자마자 항생제 주사로 처방.

수액권장해서 수액 맞는데 팔양쪽 혈관이 다 터졌다.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두 번째 포기했다.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


몇 년 전에 열이 안 떨어지는 때가 있었는데,

암 초기 증상이 이유 없이 열이 안 떨어지는 것이라 하여 건강검진받았었다.


이번엔 정신력조차도 몸을 살리려고 뇌를 아예 정지시켜 버리는 거라...

브레인포그현상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가 부팅이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안 켜져.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몸이 전시상태로 항상 긴장하고 있다가, 쉬는 거라.

장기간 교감신경 과활성 상태 이후 '반동성 탈진'이라고 한다.


밸런타인주말까지도 쓰러졌고,

생태찌개 먹으러 가서도 그거 몸에서 쉬라는 소리라는 애정 섞인 잔소리만 들었다.

/



자세하게 적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결국 몸이 제일 자산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인생인데,

일에 너무 매몰되어 나를 잃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2. 멈추면 보이는 것들


결국에 누워서야 모든 걸 멈출 수 있었다.

밀려오는 카톡은 우선순위에서 이미 밀려났으며,

생일 축하 연락과 선물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족도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 인생 내 것일 뿐이다. 가족도 내 인생은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쓰러지면 나만 쓰러지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그냥 끝이다. 아무것도 책임질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만약 내가 이 상태로 암선고라도 받아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에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



누워서 이모부의 삶을 상상했다.

내가 초등학생정도 되었을 때..

폐암으로 아산병원에 입원하신 이모부 손잡고 병원 복도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이모부 환자복 밑으로 피주머니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어.

골반암으로 재발했다 들었다.

식사하고 계시는 마지막 모습, 이모부 우셨다.

한겨울에 이모부가 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소천하셨다.


이미 명장이셨고, 첫 암수술 후 또 삶을 사셨고.

결국 다시 암으로 돌아가셨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이모부와의 시간은..

추석에 볏짚 엮던 기억.

작품전시실에서 매화차를 마시던 기억.

명절에 목놓아 우는 나를 바라보시던 이모, 이모부의 표정.

가을이면 이모부집 밤나무에서 밤을 줍던 기억.

말도 천천히.


이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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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결국.. 또..


1) 인생은 짧으며,

2) 사람은 사랑했던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으로 산다.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내 인생에 내가 발을 딛고 밸런스를 잘 잡게 된 이후로는..


인생은 결국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지에 달려있을 뿐이다.








3. 우선순위


모든 선택에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쉽게 풀린다.

우선순위의 선택이 아닐 때는 뒤돌아 후회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이때도 잘 모르겠다면,

그냥 내가 본능적으로 원하는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일 당장 죽음이라 생각했을 때, 아쉽지 않을지.

/




S가 물었었다.

'남자가 집을 해온다는 가정은 로이씨 머릿속에 안 들어있냐'라고.


내가 대답한다.

'들었다. 그리고 남자의 자산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라고.


결혼생활 10년도 못하냐.

-10년 살바에 내가 버는 게 빠르다.

노동소득으로 버는 동안, 부동산이 더 빠르게 올라있다. 그렇게 일해서 인생 바뀌냐?

-지금 상태로는 내 인생 바뀌기 힘들다.

강아지는 또 왜 샀냐, 시집이나 가지. 결혼할 마음은 있냐.

-결혼생활을 해봤으면 미련 없을 텐데, 안 해봐서 해보고 싶다.


그 이후로는 막말퍼레이드라 기억도 안 난다.


무슨 말인지 안다.

그렇게 고생하며 돈벌지 말고 그냥 여자 본인을 좀 꺾어서

같이 살면 해줄 거 다 해줄 텐데 라는 어르신들의 말씀과 똑같은 말인데.

/


내 대답의 기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돈 < 시간

2) 원하지 않는 자와의 10년 << 차라리 나 혼자 내 인생에 두 다리도 굳건히 서는 10년

3)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택하면, 내 인생의 내가 불쌍해지고 상대방도 덩달아 불행해진다.

4) 결혼생활 10년으로 받는 남편 재산+남편이 선물하는 물질적 정신적 신체적 재화의 가치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결혼생활 10년


관점이 다르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나의 건강이 전제로 깔려있으면,

그다음은 나의 안전과 나의 행복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존중받음과 너와의 시간.


나는 결국 내가 선택한 '사람'과 '그 사람과의 시간'의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

이게 나의 우선순위.


돈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이혼하는 이유가 결국 돈 때문인 것 알고.

경제적 능력은 그 사람 인생 성적표 중 하나이다.

경제적 능력뒤엔 책임감과 문제해결능력등 여러 가지 능력이 전제로 깔려있다.


이렇게 중요한 돈 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시간이며,

시간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어떤 '사람'과 시간을 함께 하느냐도 엮여있다.


암 걸려 누우면, 더 절실해지겠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더 뚜렷하게 쉽게 판단되고.

의사결정에 시간도 얼마 들지 않겠지.







4.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다들 천년만년 살 것같이 욕심낸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일 당장 죽는다 생각하면,

무엇을 내어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


팔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당근에 팔고 나면 무엇을 팔았는지 조차 기억도 안 난다.

죽을 때 다되어서 내가 무엇을 못 가졌는지 생각할 것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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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항상 나에게 내어줄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던듯하다.

보험수혜자를 너로 지정할까 한다고.

너 죽으면 다 부질없는데 보험금이 무슨 소용이냐.로 대답했었다.


장기적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염두에 항상 두었던듯하다. (처음부터)

나를 본인 삶에 들이기 위해 압박면접식으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했던 질문들이 결국엔 나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질문들이었다.

내 손에 쥐어준 모든 것들이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단 하나도 빠짐없이.


주도면밀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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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투자를 시작할 때

출구전략까지 세워두고 시작해야 하는 거랑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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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


아파서 일한게 없다.

뭐했었는지 생각도 전혀 안 난다.

26년 1,2,3월 계획 다 세워두고 들어갔는데.

통째로 날림.






6. 현명한 선택


이미 겪어본 문제, 질문, 경험들이라 모범정답을 내 손에 쥐고 있다.

잊을만하면 상기시켜 주는 일들이 터지고,

잊을만하면 또다시 나타날 뿐.


'네 인생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라는

기회들이 위기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1) 인생의 처음과 끝을 생각해 보았는가?

2) 이 사람과의 관계의 처음과 끝을 생각해 보았는가?

3) 이 사업의 처음과 끝을 생각해 보았는가?

4) 이 투자의 처음과 끝을 생각해 보았는가?

5) 이 배움의 처음과 끝을 생각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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