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형 형사 Jan 29. 2021

사무실에 걸려온 한 통의 국제전화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사무실에 걸려 온 한 통의 국제전화

 

이제 막 추워지기 시작한 초겨울 어느 날... 외국인 종업원이 며칠째 출근하지 않는다는 112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자는 양말공장 사장님이셨는데, 지금 외국인 종업원이 사는 집 앞에 와있는데 연락도 안되고 문이 잠겨있어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종업원은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면서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신고였습니다.

 

 
형사기동대 차를 타고 급히 신고장소에 도착을 헤보니 어느 건물의 지하에... 절대로 집처럼 보이지 않는 창고 같은 문을 사장님이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코끝으로 시큼한 시궁창 냄새가 올라오는 지하의 복도 끝에 달린 문에 귀를 대보니 안에서는 아주 작지만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쾅~쾅~쾅~쾅~" 주먹으로 문이 부서져라 세차게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문고리를 부시고 들어갔습니다. 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온 2평 남짓한 정말 너무나 작은 공간에... 벽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여러 장이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져 있었고, 바닥의 구닥다리 컴퓨터 스피커에서는 그 나라의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종업원은 이불에 누워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컴퓨터 모니터 상단에는 고국의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할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캠 카메라가 빨래집게로 집혀있었고, 집안에서 발견된 통장과 은행 전표로 종업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다달이 부인에게 돈을 송금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현장에 도착한 과학수사팀 요원이 '찰칵', '찰칵' 방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 담고 있을 때, 외국인임을 떠나 그 방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 한편이 아리고 슬펐습니다.

 

 
그는 불법체류자였습니다...

 

 
사인은 지병인 폐렴으로 보였는데 이 병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불법체류자라서 갈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몸 상태로 싸구려 진통제를 먹으면서 보푸라기 흩날리는 양말 공장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해 받은 돈을 고국의 가족에게 보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방에서 부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찾아 국제전화로 전화를 걸어 서투른 영어로 남편이 사망했다고 알려주자, 수화기 너머로 부인은 연신 울기만 했습니다. 여러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시신을 그 나라에 보내주기는 힘들 거 같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작은 나라였고 국내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그 나라 대사관의 주재관과도 오랜 시간을 통화했지만, 구청을 통해 시신을 화장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뭔가 관계가 있을 거 같은 곳에 전화를 돌리기를 일주일을 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찾았습니다. 국제○○연구원이란 단체에서 시신을 냉동상태로 비행기로 그 나라에 운송을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았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시신을 운송하는 요금이 고액이라 다시 주재관과 통화를 하였지만, 작은 나라의 대사관이라 예산이 넉넉지 않다면서 요금의 절반밖에 낼 수 없으니, 나머지 절반은 저에게 구할 수 없냐고 되물었습니다.

기억에는 요금이 500만 원 정도였으니 250만 원을 구해야 했습니다. 양말공장 사장을 찾아가 얼마를 구했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돈은 보탰습니다. 문을 부수고 방에 들어간 날 서랍과 지갑에서 한국돈과 그 나라 돈 얼마를 찾았는데 일부는 거기서 차출해 모라란 돈을 마련했습니다.


며칠 후 시신은 비행기로 고국의 가족 품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방에서 찾은 나머지 돈은 제 통장에 넣어 부인의 계좌로 송금을 해 주었습니다.
 

 
보름 정도가 지나 사무실로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부인은 그 나라 말로 말을 했는데 느낌으로 고맙다고 하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부인은 마지막에 누군가 종이에 적어준 것을 읽는 듯이 서투른 한국말로 "남편 보내줘서 고맙습니다, 경찰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10년전 담당이었던 변사 사건입니다...

성인이 되어 어렵고 힘든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직업으로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되어 수없이 마주한 현실과 이상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순경 시험을 준비할 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어떤 순간이라도 약자에 편에 서겠다는 다짐만은 포기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하여 오늘까지 달려왔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이전 05화 강력팀에 걸린 사기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