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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6. 2021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서울ㆍ경기권 영세상인 상습공갈 동네조폭 사건)

얼마 전 다른 팀의 후배가 사건기록을 가지고 저희 사무실을 찾아왔었습니다.

후배는 제게 수사기록을 보여주면서 "형님 바쁘시죠. 기록 한 번만 봐주세요. 피의자가 이 아저씨예요. 몇 년 전에 형님한테 걸려서 구속된 ○○○이요"

체포영장 신청서의 이름을 보니 ○○○이었고, 서울과 경기도 전역에서 영세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가던 '동네조폭', 그 남자였습니다. 동네조폭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를 뜻합니다.

......

몇 년 전 파출소의 친한 선배님께서 안마방에서 돈을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아무래도 신고한 남자가 수상하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선배님은 그 남자가 돈을 도난당했다고 허위로 신고를 해놓고는, 그 명목으로 안마방 사장님에게 합의금조로 돈을 뜯어간 것 같은데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범인의 과거를 살펴봤습니다. 전과가 상당히 많았는데, 유독 특이한 점이 사건처리 결과가 무혐의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난 사건이 또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폭행 사건은 상호 합의가 되면 공소권이 없게 되고, 사기 사건의 경우에는 범인이 사기를 쳤다는 고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으로 변질되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에 대해 대략 알아보니 법을 잘 이해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선을 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꾼의 냄새가 물씬 풍겼고, 저는 즉시 범인의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가장 먼저 범인에게 합의금을 주었다는 관내의 안마방 여사장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려 했지만 여사장님은 형사인 저를 피하셨습니다. 아마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다고 이미 합의금을 주고 끝낸 일을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으셨을 테고 피해를 당한 것을 진술하더라도 범인이 처벌될 가능성이 적었으며, 혹여 신고를 이유로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셨을 겁니다.

내사 초기부터 삐걱 데기 시작한 건데... 안마방 사장님이 저를 피할 것이란 것과 만약 또 다른 피해를 당하신 사장님들을 찾게 되어도 그리 쉽게 피해 사실을 제게 얘기해 주지 않을 거란 것 정도는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의 범행 수법은 주로 유흥업 계통의 업소에 손님으로 들어가 갖가지 방법으로 시비를 걸면서 업소의 약점을 잡고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었는데 돈을 뜯기는 사장님들은 업소의 약점 때문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그런 류의 범죄로 사건이 발생하여도 수사기관에 발각되거나, 인지하기가 어려운 암수범죄였습니다.

저는 범인의 통화내역과 ○○기록, □□내역을 발췌하여 세 가지를 맞춰가면서 관내의 안마방... 그러니까 범인이 제게 포착된 그날부터 시간 역순으로 과거의 행적 역으로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차츰 범인이 들린 업소들을 하나둘씩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범인의 범행대상은 동네의 작은 식당부터 시작해서  노래방, 주점 등등 업종을 가리지 않았으며, 내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어 네 번째로 찾은 업소가 강남구의 모 안마방이었는데... 이때부터 사건의 물고 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장님도 여성분이셨는데 업소 앞에 주차된 저희 수사차량 안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범인의 이름은 말하자 사장님은 몸을 부르르 떠시며 범인에 대해서는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싫다고 하셨지만,

저는 영세업소의 약점을 잡아 돈을 갈취하고 업소를 단속당하게 하고 협박의 도구로 경찰을 악용한 그런 나쁜 놈을 그대로 두게 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범인이 또 다른 영세업소를 찾아가 돈을 뜯어가고 있지 않겠냐고, 그런 놈을 가만히 놔두면 안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저에게 "형사님도 경찰이시잖아요. 그 범인이 나쁜 놈인 건 맞죠, 그치만 전 솔직히 형사님도 못 믿겠어요, 이게 제 밥벌이인데 신고했다고 범인이 저희 가게에 다시 찾아와 보복하면 어떡해요. 형사님도 법대로 밖에 못하시는데 솔직히 저를 보호해주실 수 없잖아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

분명 사장님 말씀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떤 최고의 베테랑 형사가 오더라도 사장님의 불안과 두려움을 완벽히 해소해줄 수 없는 게 현실이고 그게 또 현실의 법이었기 때문이었고, 그건 사장님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었었습니다.

전 사장님에게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제 수사계획을 말씀드리고 제가 알고 있는 법적 지식과 경찰의 영향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사장님은 지켜드리고 범인은 꼭 교도소에 보내겠다고 다시 설득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성격상 재판정까지 가게 되면 범인은 자신의 소행이 법 위반 자체가 아니며 돈거래와 관련된 것은 민사문제라고 주장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범인의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잡고 있는 사장님의 약점... 바로 사장님의 불법행위가 다른 사람도 아닌 사장님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있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짙게 선팅된 수사차랑 안에서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사장님은 저를 한번 믿어보시겠다면서 범인에게 당한 일을 찬찬히 진술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수사차량 안에서 노트북으로 사장님의 피해 진술을 3시간이 넘게 조서로 작성하면서 듣고 있는데, 타자를 치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범인은 영세상인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틈을 파고들어가 법을 악용하고 심지어 경찰을 이용하여 사장님의 돈을 뜯어간 것뿐만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악인의 손에 공권력이 놀아나는... 사장님의 입에서는 그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피해 진술을 마치고 진술조서를 출력하여 사장님에게 틀린 곳이 있는지 읽어보시라고 하고 저는 차에서 내려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였습니다.

범인의 악행에 피가 거꾸로 흘렀지만, 그가 무죄를 받기 위해 제 수사에 어떻게 대응하고 반격할지를 계속 생각해야만 했기에...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형사의 수사 명언을 되새기며 담배연기 한 모금을 내뿜고 흥분된 가슴을 조금 가라앉히고 있을 때,

사장님은 차의 창문을 조금 여시고는 제게 이렇게 말을 하셨습니다. "형사님, 근처에 ○○업소 사장님도 그놈한테 당했는데요, 그놈 때문에 결국에는 폐업하고 작년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거든요, 같은 상인회라 제가 연락처를 아는데 전화 한번 해 볼까요?"라고요.

폐업을 하시고 부산으로 내려가셨다는 사장님은 어찌 보면 한참이 늦었지만 제가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다음날 KTX 첫차를 타고 저희 경찰서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이로써 2명의 피해자를 확보하였고 그 이후부터 확인되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다른 업소들의 사장님들에게 앞서 용기를 내어 피해 진술을 해주신 두 분 사장님의 얘기와 까다로운 수사임에도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저를 보시고 한 분 두 분 진술을 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내사부터 시작하여 수사로 전환한 후 다섯 달에 걸친 수사 끝에 상습공갈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영등포의 모 고시원에서 범인을 체포하였는데, 범인은 제가 제시한 체포영장을 보고는 황당하다며 "이 체포영장 발부한 판사가 뭣도 모르는 놈이구만!! 당신 이름이 뭐라고, 김준형 형사, 그래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며 당당히 호송차에 올라탔습니다.

범죄가 다수이고 내용도 많아 경찰서에의 조사실에서 범인을 상대로 상당시 긴 시간 동안 조사를 했지만, 범인은 모든 범죄사실을 전면 부인하였습니다.

다음날 범인의 구속 여부를 가리기 위한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개정된 구속영장 실질심사 재판이 끝나갈 무렴 판사님은 범인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묻자, 범인은 "김준형 형사를 재판정 밖으로 잠시만 내보내 주십시오"라고 하였고 판사님은 그럴 필요 없으니까 그냥 말하라고 하자, 범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준형 형사가 업소 사장들에게 돈을 쳐먹었는지, 꿍짝짝을 해서 내연 관계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지금 경찰의 표적수사에 두눈 뜨고 당했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표적수사에 편파수사가 말이 됩니까!! 현명하신 판사님께서 제동을 걸어주십시오"

그날따라 범인의 구속영장은 평소 때와는 다르게 유독 빨리 발부가 되었습니다.

 

 

여름날, 아이스커피 한잔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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