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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02. 2021

데이트폭력과 신변보호 요청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데이트폭력과 신변보호 요청
(연인 간 범죄)

몇 년 전 '절도미수' 사건의 고소장이 우편으로 경찰서에 접수되었습니다.

고소인은 30대 여자분이셨고 도둑이 들어오려 한 집은 저희 경찰서 관내인 서울 도봉구였는데, 이상한 것은 고소인의 집이 경기도 ○○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고소인분은 피해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찾아오셨는데, 혼자서 온 것이 아니라 부모님, 그리고 친오빠와 함께 오셨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가족분들과 면담을 해보니, 주로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매우 흥분하셔서 집에 침입하려던 사람은 딸(고소인)의 헤어진 남자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강력팀에는 고소장이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고소장을 쓰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데 강력사건의 대부분은 범인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따님은 대학을 나와 지방에 있는 중견기업에 입사하여 열심히 일하여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일에 빠져 연애도 못하다가 조금은 늦은 나이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친구에게 사업자금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남자친구와 자주 다투게 되었고 그제서야 남자친구가 폭력 성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빌려준 돈은 보통 직장인의 연봉 정도의 큰돈이었는데... 그 돈을 안 받는다는 조건으로 헤어지기로 하였음에도 따님이 전화를 받지 않고 만나주지 않자, 주말에 부모님의 집에 내려와 있는 딸을 만나겠다며 주택 담에 올라 2층인 딸방의 창문을 열려고 했다는 거였습니다.

가족들은 남자친구가 딸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고 심지어 딸의 직장에까지 찾아와 난리를 쳐서 딸의 직장생활에도 큰 피해를 주었다며 흥분한 상태였지만, 유독 따님만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물리고 따님과 단독 면담을 하였는데, 따님은 헤어진 남자친구를 고소할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한 달 동안 괴롭힘을 당했고 그 사실을 안 아버님과 오빠가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 설득해보려 했지만, 남자친구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따님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며 도리어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따님은 아직도 사랑했었던 감정이 남아있었지만 남자친구가 회사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린 후에야 고소를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 난동은 따님에게 있어 창피함을 넘어서 회사에서의 입지를 위협할 수준은 난동이었고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남자의 최후의 발악 같은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의 난동은 어떻게 수습하였는지 물어보니, 직장 동료들이 업무방해로 112에 신고를 하였고 경기○○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따님의 신변보호를 결정을 하였습니다. 남자친구가 언제 또 따님을 찾아와 위협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고, 제가 남자친구에게 출석요구를 할 경우 여자친구가 자신을 고소한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저희 수사팀은 회의를 하였고, 다수범죄가 복합된 데이트폭력 사건으로 모든 사건을 병합하여 처리하기로 하여 경기○○경찰서의 업무방해 사건도 이송받아 제 사건에 병합을 하였습니다.

따님의 진술과 휴대폰에 남아있는 여러 증거들로 범죄의 증명이 가능한 폭행, 협박, 사기, 업무방해 그리고 마지막에 저희 수사팀에 접수된 주거침입까지 5개 죄명의 증거를 확보한 다음, 저는 남자친구에게 출석요구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남자친구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경찰서에 안 갑니다. 그리고 ○○이가 나를 고소했다는 겁니까? 제가 오히려 더 피해를 봤는데... 어처구니가 없네요, 우린 아직 연인 사이예요, 헤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도 우리 사이에 간섭하지 마세요. 만약에 간섭하면 경찰이라도 제가 가만히 안 있습니다"

남자친구는 출석요구를 하는 제 전화를 받을 때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고, 제 전화를 끊고 당장이라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는 태세였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에게 출석요구를 하는 날을 미리 따님에게 알려드렸고, 따님은 그날에 맞추어 휴가를 내고 부모님의 집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오전에 출석요구를 한 그날 저녁에 남자친구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저희 수사팀은 남자친구가 분명히 따님을 만나러 부모님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 예상을 하고 부모님 집 주변에서 잠복 중일 때 집 앞에 나타난 남자친구를 체포하였습니다.

남자친구는 체포를 당할 당시에는 격렬히 반항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 보다는 여자친구를 원망하는 진술을 하였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3차례에 걸친 조사와 연이어 발부된 구속영장을 보여주자 조금씩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친구는 구속이 된 이후에야 따님에게 빌려간 돈의 일부를 돌려주고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였으며, 따님이 도장을 찍어 준 합의서를 저에게 제출했습니다.

이 사건은 연인 간 범죄인 데이트폭력 사건으로 신변보호부터 체포 때까지 신속히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남자친구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가 오히려 수사진행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였습니다.

저는 따님께서 남자친구에게 합의서를 써 줄 것이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데이트폭력 사건은 피해자분들이 처벌의사를 끝까지 가져가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서울도봉경찰서

  

 
남자친구는 합의서와 여러 요소가 참작되어 구속된 지 한 달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구치소에서 나와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경찰서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남자친구는 저에게 "형사님, 우리 사이를 이렇게 법으로 떨어뜨려 놓으시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리고는 "제가 또 ○○이를 찾아가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남자친구에게 당신이 집행유예로 나온다고 해서 ○○씨는 이미 경찰에서 신변보호 중이니 찾아가서 만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고, 지금 집행유예로 나온 것만도 그나마 다행인데, 다음에는 징역형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자네는 멍청한 남자야, 이미 맘이 떠난 여자한테 부린 그 집착이 여기까지 왔잖아. 이제는 그만 잊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도록 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후 남자친구는 ○○씨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출소한 날 경찰서에서 마지막으로 남자친구를 만나고 경찰서 정문을 나가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과거와 달리 연인 간 범죄에 이제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임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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