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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형 형사 Feb 21. 2021

강력팀의 6번째 형사, 그리고 감정 없는 제3의 목격자

22살 파출소 순경으로 시작하여 41살 강력형사의 이야기...


강력팀의 6번째 형사, 그리고 감정 없는 제3의 목격자


길거리에는 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CCTV는 수사에 있어서 단서 확보와 용의자 추적에 매우 중요하며, '수사의 8할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수사에 있어 필요시가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새벽 주택에 도둑이 들었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집주인에게 들켜 조금 전에 저쪽 골목길로 도망을 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골목길 입구에 주차된 택시에 설치된 블랙박스의 불빛이 깜빡이는 걸 보고는, 앞 유리창에 적힌 기사님의 전화번호로 블랙박스를 좀 보여달라고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잠시 망설였습니다.


당시 시간이 새벽 2시경이었으니, 기사님은 분명 집에서 주무시고 계셨을 테고 제가 전화를 하면 잠에서 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경찰이지만 자신의 일도 아닌 남의 일로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받게 되실 기사님에게 죄송한 마음에 휴대폰 번호를 눌러놓고는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도망쳤다는 골목을 비추는 것은 기사님의 택시 블랙박스가 유일했기 때문에 저는 선택의 여지없이 통화버튼을 눌렀습니다.


역시나 기사님은 주무시다가 전화를 받으신 목소리로 "음~ 쿨럭 쿨럭~ 음~ 여보세요"라고 하셨고,


저는 "기사님, 주무시는데 전화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도봉경찰서 강력팀의 김준형 형사라고 합니다"라고 하니까,


기사님은 "음~ 쿨럭~ 아니 이 새벽에 형사가 나한테 웬 전화요?" 하셨습니다.


제가 자초지종을 말해드리니, 기사님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반바지에 슬러퍼를 끌고 런닝 차림으로 대문을 나오셔서 저를 보시고는 "아이구~ 새벽에 수고 많소, 범인 잡겠다는데 도와드려야지~"하시며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빼 주셨습니다.


그런데 메모리칩에는 그날의 녹화영상이 없었습니다. 블랙박스 오작동으로 주차 중 영상이 녹화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저는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음을 알려드리고 메모리칩을 돌려드리면서 "새벽에 전화드려 죄송합니다"라고 하였더니, 기사님께서는 오히려 저에게 "아이구~ 내가 미리 점검을 해 놨어야 하는데, 결정적일 때 도움을 못 드리네, 여하튼 범인 꼭 잡으슈~' 하셨습니다.


새벽에 주무시다 전화를 받으시고는 옷도 입지 않으신 채 나오신 기사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형사들은 범인을 정말 잘 잡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러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시는 주민분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선 경찰서의 강력팀은 대부분 5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기사님 같은 주민분들을 강력팀의 6번째 형사라고 부릅니다.


표창원 선배님의 '사건반장'에 경찰청의 생각하는 POL 심기수 형님께서 CCTV 수사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일선 형사들의 마음을 방송에서 잘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범인을 지켜보는 무언의 목격자, CCTV (JTBC 표창원의 '사건반장' 중)






국민에게 사랑받는 경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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