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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를 하면 저는 항상 철학자가 나왔습니다. 작년 5월에도 철학자였고 오늘 역시 철학자가 나왔습니다. 철학 같은 거 나는 조금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꿈꾸는 완벽한 세계에서 살길 바란다'는 문장은 나를 꿰뚫어 본 것 같아 부끄럽게 읽혔습니다.
제가 꿈꾸는 이상은 어쩌면 자기기만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처럼 살기에는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살아왔고, 시인이라는 직업은 제가 가진 우울 따위가 넘볼 만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시 같은 거 사실 제게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는 제게 사치품일지도 모릅니다. 시처럼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초등학교 3학년이었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팽이를 갖고 싶다고 매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는데, 포장지 속에서는 팽이 상자가 아닌 빌어먹을 책 두 권이 싸여 있었고, 그것을 보고 저는 차마 울진 못하고 달만 원망했을 뿐이었습니다. 소원 같은 거 아무리 빌어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줬다면 기도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팽이가 갖고 싶다고 부모님 귓가에 흘렸을 텐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달이라고 생각했던 그 노란 그것은 달이 아니라 가로등 불빛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책보다 팽이를 좋아했던 그냥 흔한 남자애였을 뿐입니다. 이런 제가 글을 쓴다니, 퍽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인이 되고 싶고, 이제 소원은 빌진 않습니다. 혹시 가로등 불빛이 아닌 진짜 달에게 제대로 소원을 빈다면 이뤄질까요.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매번 철학자 유형이 나왔었는데, 오늘 아침 처음으로 다른 유형이 나왔습니다. 아티스트, 예술가라고 하면 될까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철학자라는 유형이 싫다는 게 아닙니다. 제가 그냥 예술이라는 무리에 들어왔다는 게 좋았을 뿐입니다. 신기해서 다시 한 번 검사를 해봤지만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철학자가 나왔지만 말입니다. 두 번, 세 번 더 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시인을 보면 왠지 모를 색이 보이곤 합니다. 저 사람은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같은 색상이어도 명도나 채도에 따라 그것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 사람만의 어떠한 느낌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게 부럽습니다. 나도 그런 색이 보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표현해 줄 어떠한 색 하나 내 미간에 그어진다면 내가 보기 싫어도 보게 되는 콧대처럼 평생 들고 다닐 텐데 말입니다.
힘든 계절입니다. 안 힘든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습니다. 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거나 어색해도 용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