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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한 번 망가졌다.
내 방 곳곳 당신이 묻어있다. 행복은 짧고 우울은 적어도 그보단 길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당신은 내게 들어와 내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겨우 살고 있는 나를 철저히 부셔놓았다. 사실 당신이 그런 게 아닌데. 내 마음대로 당신을 들여놓고 한심하게 원망만 하고 있다. 음식도 해 먹고, 방도 치우고, 제때 빨래도 하며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었는데. 냉장고에는 아마 당신이 두고 간 것들이 부패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쓴 물건들 마다 먼지 쌓여 있고, 빨래를 하지 않아 일하러 가기 몇시간 전에 겨우 작업복을 빨고 말렸다. 전부 폐허다. 미운 당신.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졌는데. 나는 당신에게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마지막 까지도 난도질을 한 건 당신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말해봤자 나는 어떻게든 살고 있겠지. 근데 다시 또 나를 세워야 한다는 게 너무 귀찮다. 죽어야겠다. 죽는 게 답이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답을 내린 내가 비참하다. 당신은 나 하나 따위 흐려져도 신경도 쓰지 않을텐데. 그래도 죽어야겠다. 꿈이고 자존감이고 다 하등 쓸모없다. 그냥 이대로, 죽은 채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죽어야겠다. 당신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귀찮아서, 다시 나를 세우고 다독인다는 게 너무도 질려서. 이러나 저러나 결국 바스라질 것을.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는 상처를 줘야 한다는데, 상처주는 것 역시 내게 상처로 돌아오니 그냥 무던히 아파하다 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