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소한 것들에서 느끼는 행복을 즐깁니다. 라면에 다시마가 두 개 들어 있다던가, 서점에서 원하던 시집을 단번에 찾을 때, 부스스한 머리와 잡초처럼 자란 턱수염이 골방에서 폐관 수련하는 시인처럼 보이는 새벽, 저는 이런 순간들이 반갑습니다. 제가 행복하다 느끼는 것들은 작은 슬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면서도 작은 것에 만족하는 내가 불만스럽지만, 그게 다입니다. 이 소박한 희열은 큰 기쁨을 가져다주진 않지만, 큰 슬픔 또한 겪지 않게 해 줍니다. 아홉 번 만족하다 한 번 슬퍼하면 됩니다. 작은 슬픔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느끼냐입니다. 뾰루지가 없는 아침을 감사해하고, 머리를 감다 뾰루지를 긁으면 그래도 얼굴에 나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다시마가 두 개들은 라면은 분명히 있지만, 어느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서점 데스크에서 검색한 시집은 직원이 실수하지 않은 이상 시집 코너에 있을 것입니다. 부스스한 머리와 자란 턱수염은 그저 씻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느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행복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능력, 저는 이 능력이 없었다면 산다는 거에 큰 타성을 느끼고 그만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친구를 잃어 방황조차 못 하고, 무기력하게 살았던 시간 속에서 나를 꺼내 준 건, 그보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과 학교 도서관에 진열된 몇 권의 책이었습니다. 저를 에두르고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부모님, 선생님, 친구, 학원보다, 자기 전에 몰래 침대 속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 몇 편과 전혀 나와 관련 없던 도서관이었단 말입니다. 저는 야망을 잃어버린 대신, 겨우 숨 쉴 수 있는 밑바닥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처럼 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선거날입니다. 제가 내일 취할 수 있는 작은 슬픔은 무엇이 있을까요. 투표용지, 만나기로 한 친구와 먹을 점심, 밖에 나갔다 왔다는 뿌듯함, 우선 이쯤인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성취감이군요. 오늘은 한 번 슬퍼하는 날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