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을 쓰는 방법

금방 흘러갈 것들

by Deul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쟁반에 놓인 구겨진 냅킨을 버리고, 한 두 모금 남은 커피잔을 싱크대로 옮긴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는 빈 잔이 제법 쌓여 있었다. 그것들 사이에 깨지지 않게 무심하게 놓았다. 그리고 나서는 오전에 마시다 남은 내 커피잔에 뜨거운 물을 재탕한다. 매장 앞 남자중학교에 다니던 원어민이 작년 이맘때 준 스타벅스 머그잔. 여름이 끝날 때쯤에 다시 보자던 그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라고 행정실 선생님에게 전해 들었다. 본인의 고향이라는 버지니아가 적혀있는 머그컵. 뜨거운 음료를 마시지 않아 꺼내두고 방치했던 나도 이번 겨울은 제법 춥다. 오른손등이 시렸지만 어쩔 수 없이 손바닥만 데우며 무얼 먹을까 고민한다. 뒤통수로 들리는, 부딪히고 무너지는 소리. 무리해서 잔뜩 들다가 놓쳐버린 사람처럼 싱크대가 울렸다. 뜨뜻미지근하게 김이 오르는 잔을 내려두고 다시 돌아간다. 한겨울은 바로 헹궈내지 않으면 금방 마른다. 벽면으로 끈적하게 얼은 듯한 레몬차, 들끓었던 우유 자국 그대로 굳어버린 스팀 피처. 커피머신 위로 은은한 머그잔도 얼마 남지 않았고, 건조대는 욱여넣은 빈 잔으로 빽빽하지만, 점심과 저녁 사이의 오후는 손님도 별로 없는데, 나를 보채듯이 쓰러진 것들. 내게 투신하듯 소리친 것만 같다. '더 미루면 우린 부서지겠다. 립스틱 자국 품고 그대로 낙하하겠다. 커피 링을 나이테처럼 켜켜이 썩어가겠다. 정리할 수 없게 정리되지 않겠다.' 익숙한 노래지만 제목은 잘 모르는 팝송만 카페를 허밍 한다. 몇 번이고 무너진 미련도 차곡히 가라앉으면 결심이 될까. 다짐처럼 퍼낼 수 있을까. 뜨거운 물 한 번 쏟아 내리면 금방 물러 흘러갈 것들에 웃음이 난다. 너무 즐거워 시끄럽게 씻고 닦는다. 얼굴까지 튄 물방울이 자국 없이 마른다. 이렇게 쉽게 녹아내릴 걸 알았었더라면. 고이지 않도록 털어낸 것들을 더욱 깊게 욱여넣는다. 새로 올 사람에게 줄 잔이 얼마 없는 걸 알지만 계속 쌓아놓는다. 지겨울 만큼 눈이 오면 오히려 좋을 것 같다. 오는 손님이 눈보라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게. 그새 머그잔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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