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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식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들어감’이라고 한다.
점차, 조금씩이라는 단어가 가진 속도를 떠올려 본다.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단숨에 흠뻑 빠지는 것보다는 걷고 또 걸어갈 길이 있는 사이가 나는 더 좋다. 사실 ‘천천히’에 담긴 속도는 여린 마음을 품고 있다. 조심스러워서 꽉 쥐지 못하고 살며시 힘을 더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애틋해서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애틋해진다. 누군가를 찾는 마음이 예뻐보여 마냥 안아주고 싶고, 누군가의 시간을 궁금해하는 모습이 따뜻해 보여 넋을 놓을 수밖에. 그렇게 서로에게 점차, 조금씩 물들어져 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