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혼자 여행해 본 적이 없어서
맑았다. 하늘에 구름 하나 없었다. 바다는 투명한 옥빛에서부터 민트, 짙은 청록으로 층층이 쌓여 빛났다. 얼음이 채워진 물 잔 표면에 작은 물방울이 일어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에는 물놀이하는 이들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눈으로는 그들의 몸짓을 좇았다. 막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는데 일이 벌어졌다. 오른쪽 눈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나오더니 뺨을 따라 굴렀다. 전조는 없었다
같이 산 지 10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여행’이라 함은 오직 단둘의 것이었다. 때때로 부모님이 ‘+⍺(플러스알파)’ 개념으로 함께하기도 했지만, 여행의 동반자는 -암묵적으로- 너와 나, 우리로 한정되었다. 불운하게도, 나는 한동안 병실에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고 나오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의 등에 회색 그림자가 짙어졌다. 여행이라도 다녀와. 그는 알겠다고 말했지만 실현하진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그가 친구와 여행을 해보겠다고 운을 떼었다.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가 여행을 가기 하루 전날, 내게 물었다.
“보내줘서 고마워. 근데 나 없을 때 뭐 해?”
“글쎄, 뭐 생각한 건 없는데.”
지금까지 홀로 여행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누가 시키거나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결심하지 못했다. 고속버스든, 비행기든, 탈것에 오르고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혼자가 아니었다. 도착지에는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여행은 응당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을 생각을 하니 처음 겪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부아가 나는 건 아닌데, 싸움에 져주는 느낌도 아닌데, 바람 빠진 풍선을 닮은 허기라고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 이를테면 책만 있는 방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어졌다. 검색창에 ‘북스테이’라는 단어를 넣어봤다. 양주, 강화, 파주……, 그리고 제주. 왕복항공권, 검색, 확인, 예약, 결제.
동반자 없는 침대에서 알림 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기내용 캐리어 가방의 바퀴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강산을 구름 사이로 내려다보며 날았다. 101이란 숫자가 적힌 빨간 버스를 탔고 검은 돌담이 군데군데 보이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처음 보는 골목길을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핸드폰 내비게이션은 내 손을 이끌었다. 비릿한 해풍이 코에 감기기 시작했다. 숙소가 접한 도로 끝에 바다까지 걸려있었다. 바다가 가까이에 있는 곳, 난 도착했다. 나는 나만 데리고 여기 왔다. 그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내 첫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는 현실에 존재하며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는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제시하였다.’
시계를 볼 일이 없다. 계산할 시간이 없다. 계획이 없다. 정해진 게 없다. 동행이 없다. 눈치도 필요 없다. 꼭 들러야 할 맛집도 없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꼭 해야 하는 일도 없다. 나는 당위의 시간을 건너왔다. 익숙한 것에서 아주 멀어졌다. 의미화의 세계를 떠나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의 지대에 도착했다.
이 물방울, 한쪽 뺨에만 흔적이 남은 이 눈물의 의미는 내가 움켜쥐고 있던 모든 의미망을 벗어났다. 바다를 전망 트인 높은 곳에서 보고 싶었고, 배가 고팠을 뿐이었다. 그렇게 난 2층 바다 뷰 카페로 걸어 올라갔고, 단지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전조는 없었다.
초록빛 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색 하늘.
도저히 가닿지 않을 것만 같던 유토피아를 실현해 낸 장본인은 신이 아니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내가, 나를 데리고 이곳에.
어쩌면 나의 첫 헤테로토피아.
*인용 출처: E앙데팡당, “헤테로토피아 : 지금 우리는”, 매거진 [그루잠 깨기], 2020년 11월 24일, https://brunch.co.kr/@ewhaindependent/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