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혼여(혼자여행)하는 밤
난간에 몸을 기댄다. 이렇게 무거웠던가?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던 와중에, 층계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일 줄은 몰랐다. 숙소 안내 문자를 받았을 때 찬찬히 읽었어야 했다.
민트빛 바다와 눈부시게 하얀 뭉게구름에 시선을 빼앗겨서 그러지 못했다. 이 한 몸을 감당하려고 채비한 짐이 이렇게 정말 짐 같을 줄이야.
캐리어가 무거우시면 프런트에 맡기세요! 객실로 옮겨드립니다.
숙소 주인이 내게 미리 보냈던 이 문자의 속뜻을 지금 알았다. 이 말에 기대어 약간의 도움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떨어지거나 다치지 말라고 설치해 둔 난간처럼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 같은 이런 말, 내가 놓친 작은 배려가 아깝다. 기어이 남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 지금일까. 10여 년 동안 한 남자 곁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셌으며 부탁하지 않아도 매번 내 손에 있던 짐을 채갔다. 그 덕에 세상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도 내 손은 자유로웠다. 그렇지만 지금 내 손은 그렇지 못하다.
나만의 첫 휴가, 완벽하고 싶었다. 살면서 나 혼자서만 자는 외박은 처음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넘는 동안 서로 다른 곳에서 밤을 보낸 적도 -내가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면- 없었다. 이번 참에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고 나는 충동적으로 바다와 가까운 숙소를 예약했다. 소위 말하는 ‘혼밥’처럼 나도 ‘혼자’ 여행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내 모든 선택이 향하는 길에는 항상 그를 위한 조건이 메일의 참조처럼 따라다니곤 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잘하지 못하는 성향 탓에,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아서, 더군다나 내가 살아있는 상태로 그와 함께 맞붙어 있는 시간이 좋아서 나는 내 자유의 일부를 스스럼없이 위탁해 왔다.
티셔츠가 땀에 젖어 등에 바짝 붙기 시작했다. 층계에는 에어컨도 -당연히- 없다. 아슬아슬하게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난간에 기댄 채 숨을 고른다. 난간 너머 깊은 곳은 이미 어둠이 잠식했다. 그 심층을 알 수 없는 바닥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있는 내 몸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용기도 하강한다. 아프고 나서는 종종 마음이 추락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는 안 되는 걸까. 난간 밖으로 나를 밀어버린 남의 말이 내게 엉겨온다. 3년 전에 묵었던 한 숙소 주인과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사장님, 저희 퇴실해요. 덕분에 잘 쉬고 갑니다.”
“네, 네. 그런데……, 저기 뭐, 좀 아프신 것 같던데 무슨 병, 뭐 옮거나 하는 건 아니죠?”
잘 묵고 간다는 인사에 그 사람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물었다. 호기심과 이기심이 범벅되어 나온 질문이었다. 당시 내 머리는 아주 볼품없었다. 방을 안내할 때부터 주인은 내 머리 쪽을 힐끔거리긴 했다. 새로 자라난 머리카락은 얇은 데다가 숱도 많지 않았고 피부에 붙어 자랐다. 꼭 돌에 붙은 매생이 같은 모양새였다. 항암이라는 전쟁을 겪으며 얻게 된 이 표증이 누군가에게는 입이 근질거리는 물음표의 대상이었다. 병을 견디고 왔을 뿐인데 졸지에 병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으로 몰렸다. 경계 밖으로 내몰리는 일은 날카로운 위협에 맨몸으로 맞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약한 사람, 남에게 피해를 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 혼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살았다. 다들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 살았던 것일지도.
나는 병이 있는 고로, 약자가 되었다. 약자가 처음 혼자 여행을 왔다.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건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건들 때문이다. 사건은 어떤 공간에서 만끽하게 될 어떤 기분일 수도, 혹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부풀어지는 감정의 전개일 수도 있겠다. 몸이 약하기 때문에 약자이고, 약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면서 점점 작아졌으므로 약자의 위치를 고수해 왔다. 배낭을 번쩍번쩍 들쳐 멜 수 있는 몸이면 좋았겠건만 아직 내 몸은 ‘허약’의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무거운 걸 들으면 정형외과에 가야 했다. 항암과 이식으로 근육이 빠져버린 자리에 살만 들어찬 탓이었다. 진즉에 근육을 만들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지금은 아무 소용없다. 오늘, 나만의 방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짐을 들고, 난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서.
바캉스. ‘무언가 비어있다’ 혹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라는 의미다. 그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되었으나 이 순간의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병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딘가를 목적지로 삼을 때 ‘혹시 몰라서’ 대비해야 한다. 마스크, 비상약, 세면도구는 물론이고 체온계, 비강 세척 용품뿐만 아니라 계절과 관계없이 -체온조절을 위해- 스카프와 카디건까지 챙겨야 한다. 아니, 꼭 병 때문이었을까? 빈손으로 훌쩍 떠나도 되는 길이었다. 하룻밤의 여정이니 이틀 정도는 불편함을 참을 수도 있었다. 셀프 선물처럼 내가 내게, 스스로 선사한 혼자만의 첫날밤이 우스워진다. 나를 비우기 위한 여행의 문턱에서 고작 짐 하나 무게에 허덕이고 있다니!
난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난간 이쪽은 좋은 곳, 저쪽은 끔찍한 곳이었다. 지금까지 울타리 안쪽에 있는 채로 세월을 보냈다. 가족이란 이름의 울타리는 충분히 안전했다. 스무 살 즈음부터 나는 혼자가 아닌 둘이 되기를 즐겼고 연인이란 울타리를 내내 벗어나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은 나와 가깝지 않았으며 둘이어서 얻게 되는 안락함과 만족감은 편리했다. 결혼한 뒤 병을 얻고서도 쭉 그러했다. 불평할 거리도 없었고 불편한 일도 없었다. 여태 혼자 길을 떠나지 않은 탓은 거기에 있었다. 푸시럭, 난간 아래에서 소리가 난다. 문득 난간의 창살이 흐릿해지며 새장의 형상과 겹쳐 보인다.
내게 부여된 새장은 뭉게구름처럼 푹신한 솜사탕이었다. 그 안에서 가만히 앉아 편하게 숨만 쉬면 그뿐이었다. 몸이 병으로 약해지자 둘만 있는 집은 안전함과 안락함이 덧대어져 견고해졌다. 내 목숨이 나만의 것이 아니듯, 내 건강도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달고 푹신했으며 다치지도 않게 설계되었다. 그러므로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았다. 다친 날개와 고꾸라진 몸을 일으켜 주던 이는 남편이었다. 그는 충실한 보호자였고 믿음직한 버팀목이었지만 나는 너무 오래 기대어왔다.
기우뚱, 몸이 자꾸만 기울어진다. 나를 지키기 위한 짐, 혼자서 감당해야 할 자신의 무게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캐리어만큼의 무게일까? 가까스로 난간에 기댄다. 의도적으로 나를 ‘혼자’ 둠으로써 감각되는 이 모든 질량을 어째야 할까. 지금까지 감당하지 않아서 미루어두었던 내 존재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새장 문이 열렸을 때조차 날지 않는다면 새는 새가 아니니까. 더는 엄살 부리지 않겠다. 허벅지, 허리, 팔, 손목에 힘을 준다. 발을 든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는다.
난간 너머, 어두침침한 곳에서 구름같이 하얀 새가 날아오른다. 온몸의 근육이 팽팽해진다. 이 순간의 감각을 믿자. 나라는 사람이 지닌 무게감을 두 발로 감당한다. 계단 한 칸을 오른다.
다시금 선을 넘는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난간에 기대지 않고서,
조금은 더 딱딱해진 등껍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