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어렵고도 중요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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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는 빵집 겸 카페가 하나 있다. 거기엔 늘 신선한 치아바타로 만드는 샌드위치 세트가 있어, 나는 꽤 자주 거기서 샌드위치 세트로 점심을 해결한다. 세트는 치아바타 샌드위치 두 쪽에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구성돼, 가벼운 점심으로 먹기에 정말 아주 딱인 메뉴다.


처음에는 샌드위치와 커피만 나왔었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자주 가서일지, 사장님과 안면을 터서일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베푸는 사장님의 새로운 서비스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샌드위치 세트를 주문하면 추가로 빵 몇 조각이 옆에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내 배에 딱 맞는 양이었었다. 그런데 추가로 예쁘게 썰어주시는 빵까지 다 먹느라 점점 배가 부르고 힘들어졌다. 이제는 가벼운 한 끼가 아니라 배가 너무 불러 저녁까지도 배가 꺼지지 않는 거창한 한 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아기자기한 접시에 정성스레 플레이팅 되어 나오는 이 빵 몇 조각을 안 먹기에는 왠지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맘이 쓰이고, 그렇다고 매번 다 먹자니 배가 불러 못 견딜 것 같았다.


뭐, 나는 그저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이니 다 먹든 남기든 철저히 내 자유이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쉽게 생각 되지가 않았다. 그 빵 몇 조각이, 내게 늘 친절한 빵집 사장님과의 인간관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는 늘 이런 미묘한 감정의 어려움을 유발하곤 했다. 상대는 종종 내게 호감이 있어 내가 필요한 이상의 호의를 베풀지만, 나는 그 호의가 부담스러운 순간이 생긴다. 난 여기까지만 와주면 좋겠는데. 여기까지만 베풀어도 난 정말로 충분한데. 베푸는 상대의 고마운 마음을 해치지 않으려, 부담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받고나면, 내 양 이상의 빵을 먹은 것처럼 기분이 개운치 않다.


오늘도 내가 주문한 샌드위치 세트 옆에는 여전히 사장님의 호의로 느껴지는 빵 이 딸려 나왔다. 상대가 필요한 만큼의 것을 주는 것. 그게 참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란 걸, 내 앞에 놓인 빵 몇 조각을 보고 새삼 느낀다.


정성에 답하고자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비우고 가는 게 최애빵집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빵집을 나서면서 아주 정중히, 추가로 빵은 더 안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봐야지. 물질이든 감정이든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게, 그러니까 내가 필요한 정도가 얼만큼인지를 한번쯤 정확히 짚어주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분명 이 동네에는, 나처럼 너무 서비스를 의식한 나머지 꾸역꾸역 다 먹고선 뒤돌아 힘들어하는 소심한 사람들이 더 있을지 모른다.






2019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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