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이 귀한 사람이 되고싶다
나는 스물두 살 때부터 일을 하기 시작해서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20대를 보냈다. 그 중에는 제법 큰 회사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그런 곳에서는 계약직으로 일을 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하던 역할이 내가 하던 일들이었다. 정규직들이 하는 메인업무가 아닌, 잡다한 행정 처리와 심부름들. 그 중에는 팀원들이 먹을 다과거리를 시키고 관리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커피머신도 닦고, 주변 쓰레기도 정리하고, 고장난 정수기도 고치는 홍반장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직원이 나를 불렀다. 20대 중반이던 나랑 나이가 비슷했을까, 앳된 그 정규직 여직원은 먼 자리에서까지 날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듬지씨 저기 커피가 쏟아져있어요"
처음엔 어쩌란 건지 의아했지만 그 의도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가 가리킨 다과테이블 앞에는 누가 흘렸는지 까만 커피가 쏟아져있었고, 50명이 넘는 직원들 중 아무도 그걸 닦고 있지 않는 거였다.
나는 얼른 그 흥건한 액체를 닦고 다시 쾌적한 다과테이블로 원상 복귀시켰다. 그러면서 묘한 열등감이 몰려왔다. 아무도 이 액체를 닦을 생각도 안했으며, 유일하게 그것을 의식한 여직원마저도 그걸 몸소 닦을 생각이 아니라 내게 와서 닦아달라고 요청하는 꼴이라니. 초롱한 눈빛의 그 여직원은 분명, 내가 이런 시녀 같은 일을 하며 푼돈을 버는 사이, 석사를 따고 어학연수를 다녀와 근사하게 이곳에 정규직으로 입사해, 테이블에 흘린 커피를 어떻게 닦아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거였다. 그런 일을 하기엔 너무 고귀한 인력이므로.
정확히 그 일화를 계기로 나는 피부로 매일매일 열등감을 체감했다. 나보다 더 어린 여자애들이 정규직으로 입사해 내게 스캔을 부탁하고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주으라고 하면서부터 제대로 자존심이 구겨지기 시작한 거다.
나의 고귀함은 어딨는걸까. 나는 왜 저들처럼 바닥에 떨어진 것을 줍는 게 불편하지 않은 걸까. 난 왜 언제든 사람들이 먹다버린걸 치우고, 막힌 채수구멍을 뚫고, 변기청소도 할 수 있는 비위를 가진 걸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점점 나의 쓸모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아, 비정규직이 느끼는 설움이란 게 이런 거구나.
고용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직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분명 고급인력과 잡다한 인력을 구분하려고 한다. 당연히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한 사람들이 메인업무에 집중하길 바라겠지.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당연히 커피를 타거나 쓰레기통을 비우고 싶지 않을테고. 그런 프라이드를 가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이 간극은 너무도 당연한 걸까. 내가 자격지심을 떨치려면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나. 이 질문은 나의 20대 후반을 참 많이 괴롭혔던 것 같다. 여전히 파견직과 계약직을 벗어나지 못한 채 30대를 보내는 언니들을 보며 저게 내 미래일까 아찔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가 30대가 되었다.
사람이 발전하지 못한 채 나이가 들면 자격지심이 많이 뒤틀리게 된다. 어리니까 괜찮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제 이런 수모를 외면하며 살기에는 자존심이 너무나 거대해져버렸다. 존중받고 싶고,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고 싶고, 무엇보다 쓰임이 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급인력이 되기 위해 매번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려 애쓰며 지낸다. 이렇게 애쓰면, 언젠가 분명히 내가 꿈꾸던 근사한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그러나 다만, 훗날 내가 고급인력이 되었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누구라도 분명히 커피를 타고 쓰레기를 치우고 스캔을 뜨는 업무를 하게 되어있겠지. 그치만 그런 업무가 태생적으로 달가운 사람은 없다는 걸 나는 안다. 난 내가 흘린 건 내가 닦는 고급인력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 때 내가 정말로 상처받았던 건, 내가 미천한 인력이라는 사실보다, 나를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2019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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