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도 덤덤한 새해의 다짐
서른하나. 갈수록 나의 꿈은 짙어진다. 글을 쓰는 것. 그래서 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것. 단 한 톨의 부끄러움도 담기지 않은 나의 그 책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 조금의 자비가 더 보태어져 그 책이 대형서점의 가판대 위에 버젓이 올라가는 것. 이것은 속물스런 꿈일까, 속물스럽지 않은 꿈일까. 꿈이란 건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꾸는 것인 줄 알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나는 점점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변모하는 내 꿈을 발견한다.
나는 2018년 우연한 기회로 에세이집 한 권을 출간했고, 내 책이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하면 나오는 것에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참 신기해했었다. 내가 정말 뭐라도 된 양 축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라는 게 순수한 목적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이 세상의 진리더라. 책을 내기만 하면 행복이 밀려올 줄 알았지만, 출간이 곧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자 나의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 책 냈어"라는 말 뒤에는 "그래서 이제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아" 라는 자신만만한 말이 따라와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나는 서른 하나에는 안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장래희으로 작가를 택했고, 그래서 그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까지가 현실에서 통하는 장래희망이었다.
남편은 의기소침해하는 나를 위로하듯 말하곤 한다. "자긴 이미 작가야!"라고. 그 따뜻한 말은 분명 나를 위로할 때도 많지만, 때때로 분명한 듯 아직은 흐릿한 내 꿈을 더 갈망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목이 마르다. 절대로 "맞아, 난 작가야. 그러니 난 만족해"라고 대답할 수가 없다.
"아니, 내가 말하는 작가는, 알잖아. 대형서점에 놓이는 책들. 그런 책을 쓰는 작가가 되는 거야"
속물인 것 같아 미처 밝히지 못했던 나의 꿈은 그래.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다. 서른하나가 되어서야 이 못난 마음을 밝힌다. 나는 내 꿈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돈으로 내 집도 사고 싶고(지금 집은 전세다), 남편 차도 바꿔주고, 엄마 아빠의 보금자리도 옮겨드리는 그런 멋쟁이 작가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늘 생계적 수단으로써의 다른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삶을 청산하고 싶다. 더 많이 사색하고 보고 듣고 경험하여 내 글에 녹여낼 수 있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슬프지만 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을 지향하는 순수한 부류의 위인은 못되나보다. 예술과 현실 사이의 어딘가에서, 문학적 가치와 대중의 인기 사이 어딘가 쯤에서 표류하는 나는 지극히 평범한 욕망의, 속세의 인간이므로.
2020년으로 넘어가던 자정의 시간. 나는 연말 연기대상에서 내가 좋아하던, 하지만 인지도는 없었던 모 배우가 수상을 하는 것을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꿈이 있는 사람들. 그래서 주변에서 뭐라건, 심지어 그게 밥벌이가 안되어 주변으로부터 참 철없다는 소리를 늘상 듣는 사람들이 결국엔 꿈을 이뤄 슈퍼스타가 되는 것은 내게 엄청난 대리만족을 준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올 해에는 꼭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좀 구체적으로는 그 책으로 내가 먹고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쯤이 되려나.
신년이 되어 반갑고 희망차기보다는 사실 어깨가 무겁다. 가볍게 방방거리는 마음보다는, 숙연히 내가 해야 할 노력을 계산하고 가늠하는 것이 내게 더 필요한 자세일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새해가 오는 것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작년 한 해의 나는 내 꿈을 위해 정말 간절히 노력했는가, 그래서 얻은 성취는 얼마 만큼인가, 하고 한 해의 노력을 연말정산 해보았을 때 나는 매년 정산표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으니까.
원하는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결과표를 받아 들고 나면 새 해의 기분이 참 뒤숭숭하다. 마냥 즐겁게 해피뉴이어를 외치는 것이 자책스럽다. 서른에는 되겠지, 하던 꿈이 점점 미루어져 서른다섯 안에는 될 거야, 로 바뀌면서 나는 점점 더 자조적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물론 사람마다 자신만의 타이밍이란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 조차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일 터. 2019년,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열심히 살지 못했고 그래서 참 아쉬운 기분만 메아리처럼 내 머리를 맴돌았다.
2020년 새해. 다이어리에 적은 나의 목표는 ‘열심히 살기'이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올 해의 내가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비정해 보이지만 열심히 살아야 내가 원하던 행복과 긍지가 비로소 온다는 걸 나는 안다. 어딘가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것이 내 일등 소망이니까. 올 한 해 난 정말 열심히 했다고, 그래서 정말 만족한다고, 내년엔 자신 있게 말해보고 싶다.
새해에는 건강과 평안과 함께, 꿈을 위해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열정과 의지력을 주시기를. 해피뉴이어.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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