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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공간

더도 말고 한 뼘의 공간이 필요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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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공간이 참 중요하다는 것. 직장에서도 반드시 직원들에게 개인 고유의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아직까지도 많은 사업주들은, 한 공간에 개미처럼 사원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든 그들을 지켜보고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선호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의 문화에서는 확실히.


나의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지금껏 대부분, 나보다 직급이 높은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훤히 지켜보는 구조의 자리에서 일해왔었다. 내 뒤의 누군가에게 내 등과 모니터를 보이는 것이 싫어 보안필름을 붙이고 최대한 웅크려 지냈던 기억들. 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곳엔 내 공간 내 책상만큼은 엄격히 존재했었으니 비교적 편안한 삶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백화점에 다니게 된 지금의 내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을 줄이야 미처 몰랐었다.


휴식의 질이 좋아야 근무의 능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백화점에 들어와 근무하면서 가장 깜짝 놀란 건 직원에게 개인 책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개인 오피스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몸 하나 제대로 앉혀 휴식을 취할 사적인 공간 자체가 없었다. 직원 휴게실이라고 주어진 곳은, 일면식도 없는 모든 직원들이 한데 모여, 그것도 불 꺼진 공간에 덩그러니 누워서 잠만 자야 하는 공간이 전부였다. 옆 동네 더 작은 모 백화점에는 그마저도 없다고 들었다. 휴게실이라기 보단 차라리 찜질방에 가까운 그 공간. 그곳에 처음 누워 잠들 때, 나는 내 신세가 어쩌다 여기까지 추락했을까 하는 피해의식에 시달릴 만큼, 공간의 부재가 주는 초라한 기분은 엄청났다.


물론 사람의 적응력은 실로 놀라워서 이제 내 신세를 비관하는 일 같은 건 없지만, 아직도 나는 내 공간이 없는 이곳에서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시간을 때워야하는 곤욕만큼은 여전히 겪고 있다. 정말로 '때운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방해받지 않고 쉴만한 개인적인 공간이 없으니 방법은 1. 하염없이 돌아다니거나, 2. 직원식당에 앉아 밥 냄새가 가득한 공간에서 억지로 책을 읽거나, 3. 그나마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려면 카페로 가서 마실 것을 돈 주고 산 뒤 공간을 얻는 것이다. 3-1. 하지만 그마저도 고객과 동선이 겹치는 곳이라면 어찌나 신경이 쓰이는지 단 30분도 편치가 않다. 고객이 왕인 백화점에서 직원의 위치란, 세렝게티의 임팔라만큼이나 나약하니까.


백화점 근무를 생경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흔히들 '직장이 백화점이면 심심할 일이 없겠다, 맨날 구경하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세상 어떤 재미난 곳도 일상이 되고 반복이 되면 그저 근무지일 뿐이다. 놀이공원의 직원들이 매일 독수리 요새를 타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 직원들도 하나같이 같은 생각뿐이다. 오늘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구경거리를 억지로 보면서 시간을 때워야 한다고. 고객들이 많아서 카페에서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그러니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쉴 공간이 정말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제로 집단 수면을 취하게 되는 그런 공간 말고, 비좁더라도 나 혼자만 쓸 수 있는 그런 공간, 책상 한 뼘 말이다.


이토록 사람에게 공간이란 참 중요한 것. 하다못해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사방이 막힌 개인 공간을 주어야 한다고 여러 동물전문가들이 일러주는 마당에, 여전히 아직도 인간계의 세상에는 개인 책상 하나 마련해주지 않는 직장들이 버젓이 존재한다. 참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야생의 동물들이 급소를 언제든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는 것처럼, 훤히 타인에게 몸을 보인 채 지내는 휴식시간은 직원에게 긴장 그 자체라는 걸 정녕 윗분들은 모르는 걸까. 아님 알고도 외면하는 걸까.


오늘도 나는 11층 직윈 식당에서 소음과 밥 냄새로 진동하는 독서의 시간을 가지다, 못 참고 카페에 들어가 쓰지 않아도 될 3,200원 커피 값을 시발비용*으로 썼으며, 다음 쉬는 시간엔 또 어디로 가서 궁둥이를 붙여야 할지까지 앞서 고민하는 중이다. 그래. 어딜 가든 온 사방이 뚫려있는 이 곳에서 나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휴식 유목민이다. 어디를 내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구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이니 찾을 수도 없는 것이려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행여라도 고용주가 되는 날이 있다면, 나는 기필코 내 직원들에게 적어도 삼면은 막힌 개개인의 공간을 주겠노라고, 꼭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생각해본다. 하루에 꼬박꼬박 6천 원을 쓰며 휴식시간을 때우는 일은 참으로 지겹고 고되다는 걸 나만큼은 정말 잘 아니까.


얼마 전 남편이 용돈을 조금 더 줄이자고 했을 때 별안간 내가 화를 낸 것도, 다 이 놈의 휴식공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까. 용돈의 대부분을 어딘가에 앉아서 쉬기 위해 커피값으로 지불 중인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래서 그렇게 화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이 불가항력적인 소비력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자신 몫의 책상이 있는 사람이 이해하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 시발비용 : 시발 비용은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이를 테면 스트레스를 받아 홧김에 고급 미용실에서 파머하거나 평소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던 길을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지출하게 된 비용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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