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 아니라 대륙을 뒤덮은 우리
5월이 끝나갈 무렵의 한 뉴스에서 북한산이 벌레 유충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보았다. 파리채를 들고서 산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털 난 애벌레를 잡아 죽이는 사람들을.
벌레 문외한인 내 눈에는 대충 송충이로 보이는 그 생명체의 정식 이름은 매미나방 애벌레라고 했다. 나는 벌레를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털이 많이 난 애벌레는 조금 징그럽다. 그런데 그런 해괴하게 생긴 벌레들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니, 일반적이지 않은 풍경이긴 했다. 등산길에도, 등산길 밑 주차장에도, 이제 막 등산을 끝내고 차를 타려는 사람의 옷에도, 자동차 바퀴에도 애벌레가 붙어있었다.
뉴스를 자세히 들어보니, 유독 따뜻했던 작년 겨울 탓에 매미나방의 유충 대다수가 죽지 않고 번식하게 된 이상현상이며, 이를 잡아 죽이지 않으면 성충이 된 매미나방이 북한산을 뒤덮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기자의 뒤로는, 어디서 지령을 받은 건지 직원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로봇처럼 무표정하게 파리채를 휘둘러 애벌레를 죽여대고 있었다. 1초에 두세 마리씩, 거의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암, 잡아 족쳐야지.
하지만 사람 심리는 참 이상도 해서, 막상 사람들이 벌레를 그냥 막 보이는 대로 무식하게 짓이겨대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어떤 종족의 개체수를 사람 손으로 조절한다니, 그래도 되는 걸까. 그것도 무지 과학적 접근인 양 굴지만, 결국 파리채로 보이는 족족 눌러대는 게 전부인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영문도 모르고 대학살을 당하는 벌레들이 어쩐지 불쌍한 것 같기도 했다.
누가 그럴 권리를 사람에게 주었을까. 기하학적으로 늘어난 한 자연의 개체수를 인간이 조절할 권리를 과연 누가. 그렇게 파리채를 들고 벌레를 죽여대는 우리 인간도, 지구 전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산을 뒤덮은 벌레만큼이나 기하학적인 숫자일 텐데.
정말 다행히도 아직 인류의 개체수를 못마땅히 여기는 상위 종족은 없어서 우리는 그렇게 허망한 대학살은 당하지 않지만, 인간 역시 대륙 전체를 뒤덮은 하나의 벌레라고 해도 뭐, 과언이 아닐 것만 같다.
큰 벌레들이 작은 벌레를 대학살 하는 뉴스가 끝나고, 나는 씁쓸한 동시에 북한산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난 벌레가 싫다.
*북한산에 기어 다니는 매미나방 애벌레의 털에는 독이 있으므로, 만지면 해롭다고 합니다. 물론 너무 징그러워 만질 생각은 들지 않을 겁니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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