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생리통, 그리고 나의 의지
생리 둘째 날. 배가 평소보다 심하게 아파 옆팀 안내데스크에 가서 진통제 한알을 꿔다가 따뜻한 티와 함께 마셨다. 약을 삼킨 지 10분도 채 안 되어 뻐근하던 아랫배의 통증이 사라졌다. 양약의 즉각적 효능은 이럴 땐 참 바람직하다.
어렸을 땐 생리통이 없었는데 되려 나이가 들면서 없던 생리통이 생겨나는 중이다. 우리 몸이 더 건강하지 않을수록, 섭생이 영양가가 없을수록, 여자들은 그날의 통증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그래서 한때는 바디버든(body burden)*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섭생을 다 뜯어고치는 사람도 많았더랬다.
하지만 알다시피 살면서, 그것도 직장 생활하면서 제일 힘든 게, 바로 건강한 섭생이다. 유기농, 날것, 푸르르고 신선하고 제철인 것일수록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두배다. 그리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이 더 쉽게 지천에 널려있는 터라, 결국 바디버든이니 뭐니 해도 일상적으로 먹게 되는 건 가공되고 가공된 음식일 뿐.
그러니까 나는 지난 한 달간, 아주 당연히 그저 그런 섭생, 아니 교과서적으로는 아주 형편없는 섭생을 해왔고, 그에 대한 대가가 정직하게 내 몸으로 나타나 이번 달 생리통으로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아랫배에 누가 돌을 넣어놓은 것처럼 묵직하고 싸한 이 통증. 죽을 고통은 아니지만 귀찮고 불편한 이 고통을 나는 견디지 못해 매달 진통제를 하나씩 찾아먹는다. 언젠가는 정말로 몸이 건강해져 '생리통이 뭐야?' 하는 날을 막연히 기도하면서. (그런 일은 노력 없이 쉽게 이뤄지지 않겠지만)
그러고 보면 인생의 모든 질서는 이 생리통을 닮아있다. 충분히 개선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무(無) 통증'이라는 뿌듯한 결실을 맛볼 수 있고, 심지어 늘 개선방법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음 달부터는 물 많이 마시고 몸 좀 챙겨서 생리통 좀 없애야지, 하는 마음은 매번 작심삼일로 그치기 쉽다는 것.
특히나 나 같은 경우는, 기분이 안 좋으면 밀가루와 카페인을 대량 몸에 집어넣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병을 가지고 있어, 늘 이 계획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니 생리통 개선방법을 박사급으로 알고는 있어도, 실행단계에서 늘 좌절해 진통제를 달고 사는 것이다. 저번 달도, 이번 달도, 그리고 스트레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아마 다음 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 징글징글한 뫼비우스의 띠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오늘은 마법의 양약으로 아랫배를 달래고 나니 심신의 평화가 찾아왔다. 얼마간의 평화, 얼마간의 자책감으로 마무리하는, 매우 익숙한 생리 둘째 날이다.
* 바디버든(body burden) : 일정 기간 동안 체내에 쌓인 유해물질의 총량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 음식 속 화학물질 등이 그 원인이 된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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