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먹는 게 제일 중요해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성에 차게 먹는다

[브런치].jpg


1. 나이가 들면서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의미부여를 많이 하게 된다. 한 끼를 먹어도 만족스럽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 싸고 간편한 것보단 비싸더라도 정성이 담겨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다이나믹하고도 손쉬운 행복이 있다면 바로 먹는 행위일지니, 나는 오늘도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가장 진실된 고민을 한다.


2. 모처럼 남편과 함께 쉬는 휴일. 한남동의 먹자촌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핫플레이스에 놀러 갔다. 건물 주차장에 차를 델 수 있다는 편리함 덕분에 더 메리트가 있다고 느꼈는데, 막상 가보니 맙소사. 그곳은 여러 음식점들이 한 데 뭉쳐 도떼기시장처럼 먹어야 하는 일종의 푸드코트였다. 차별점이 있다면 조금의 번지르르함이 가미된 고급 푸드코트였달까. 당황스러움이 밀려왔지만 이미 차를 댔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만 팔천 원과 이만 칠천 원짜리 스테키동과 장어덮밥을 주문했다.


2-1. 이 곳이 맛집이라고 떠들어대는 인스타그램 리뷰를 내 믿었건만. 사방이 뻥 뚫려 시끄럽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북새통 속에서 우리는 온전히 스테키동도 장어덮밥도 즐길 수 없었다. 물론 프랜차이즈이니만큼 일관된 평균 이상의 맛은 보장되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나온 요리를 보며, 30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왁자지껄 들려오는 옆 테이블의 소음을 견디며, 우리는 이 요리가 우리를 위해 정성껏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2-2. 설상가상으로 밥만 먹고 주차비를 정산해 황급히 나가려는데, 이런 미친. 이 건물에서는 물건을 산 것은 정산이 되어도 밥값은 정산이 안된다는, 주차장 여직원의 매우 사무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겨우 주차 하나만 바라보고 참았던 인내심이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이 건물을 이렇게 기획한 윗분들의 잘못이지, 월급을 받고 자신의 일을 할 뿐인 여직원이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결국 우리는 콧바람만 쒸익쒸익 내뿜으며 건물을 빠져나왔다. 밥집의 분위기는 그렇게나 형편없더니 주차는 또 발렛이라니 대관절 이해할 수가 없다.


2-3. 모처럼만의 데이트가 망했다고 생각하니 분해서 디저트라도 제대로 된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근처의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 이곳은 오늘 한남동에 오기 전부터 매우 심도 있는 검색 끝에 찾아낸 내 스타일의 디저트 집이었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프랜차이즈도 아니었고, 여러 사람들과 맞붙어 도떼기시장처럼 먹어야 하는 곳도 아닌 곳, 오직 한남동에만 존재하는 작지만 소중한 디저트 집. 단호박 케이크와 말차 케이크를 시켜 아까 전의 후회스러운 점심을 다독여본다. 다행히도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디저트 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갈수록 먹는다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담는다. 많은 감정을 싣는다. 정신없이, 대충, 아무거나. 이런 건 내 인생 어느 순간에나 많으니 제발, 먹는 순간만큼은 밀도 있고 가치 있길 바라고 또 바라게 되나 보다.


3.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밥을 먹고 카페를 갔는데, 친구는 내가 비주얼을 아주 중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사진에 담기 예쁜 카페가 있다. 하지만 그런 카페들 중에는 예쁘기만 하고 맛은 없는 곳들도 더러, 아니 자주 있었다. 친구와 간 카페는 운이 나쁘게도 예쁘지만 맛은 없는 카페였다. 카페를 검색하는 수고를 해 준 친구를 무안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친구도 나도 그 카페가 맛있는 집이 아니란 걸 케이크를 몇 입 떠먹어보고는 깨달았다. 그 날, 친구와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그 카페에 대한 어떤 얘기도 올라오지 않았다.


4. 서른의 입맛과 스무 살의 입맛에는, 큰 간극이 있다. 같이 일하는 20대 초반의 동생은, 내게 이 집이 맛있네 저 집이 맛있네 이야기해주는 걸 참 좋아한다. 처음엔 그런 정보력이 고마워 핸드폰 메모장에 깨알같이 받아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편과 저녁을 먹고 그 동생이 알려준 디저트 카페에 가서 주문을 했는데, 아.. 내 인생에 그렇게 형편없고 대충 만든 디저트는 처음이었다. 수플레 팬케익이었는데, 그냥 묵사발에 가까웠다. 계산을 할 때부터 뭔지 모르게 허둥대던 어린 남자 알바생이 내내 불안했는데, 결과물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커피는 대체 어떻게 내렸길래 맛이 양잿물 같은 지, 도무지 한 모금 이상을 마실 수가 없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커피를 남겼다. 나는 삼십 대. 내 입맛은 이제 어느 정도 수준이 아니면 맛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걸까. 분명 그 친구가 맛있는 곳이라 했는데. 어쩌면 어린 친구의 입에는 이게 정말로 맛있었던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황망한 기분으로 나는 디저트 집을 나왔고,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 적었던 그 친구의 소개 리스트들을 몽땅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더불어, 이제는 서른 살 이상의 지인에게만 맛집을 소개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020 일상의짧은글

ⓒ글쓰는우두미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벌레가 벌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