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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n 23. 2020

영화 <조이(Joy)>리뷰

조이망가노는 어떻게 역전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는가

영화 <조이(Joy,2015)>


<조이(JOY)>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조이 망가노'는 이른바 '인생역전'이 되기 전 아주 힘들게 살아가던 여성이었다. 하필이면 경제력 없는 남자와 결혼했고, 하필이면 이혼을 결정한 후에도 몹시 가난했다. (실제 이야기보다는 약간의 픽션이 가미되었겠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주변 환경은 정말 악조건인데, 이를테면 아버지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 중이고, 이혼에 상심한 어머니는 방에 눌러앉아 TV 드라마에만 빠져 산다. 그리고 법적으로 분명히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독립을 못해 아내 조이의 집 지하실에 사는 전남편까지 있다. 그런 상황들로 미쳐버리기 직전인 조이를 유일하게 응원하는 건,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따뜻한 희망만을 심어주었던 피붙이 할머니뿐.



결코 녹록치 않았던 조이의 삶.


여러 일을 하며 양육을 하고 딸린 식구들도 먹여 살려야 했던 조이는, 어느 날 아버지의 새 여자 친구가 초대한 요트에서 깨진 와인잔을 치우다 손을 크게 베인다. 철없는 전남편이 흘린 와인을 치우기 위해 직접 걸레질을 해야 하는 것도 짜증 났지만, 그보다 조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 대걸레 그 자체였다. 사용했던 대걸레는 흡수력도 영 꽝이었고, 걸레를 직접 손으로 돌려 짜야했기 때문에, 와인잔 파편이 박힌 걸레를 직접 만진 조이의 손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돌돌이와 분리형 물걸레가 일상적인 시대지만, 그 시절만 해도 아직도 봉에 일체형으로 달린 걸레를 쓰던 때다.)


그 날 이후 시중에 나와있는 걸레가 몹시 불편하다고 생각한 조이는, 편하게 쓸 수 있는 대걸레를 고안하기 시작한다. 손을 대지 않고도 저절로 물이 짜지고, 걸레를 봉과 분리해 세탁해서 쓸 수 있는 그런 대걸레를. 물론 조이는 전문 발명가도 아니고, 아이와 전남편과 친엄마를 먹여 살리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줄 알았던 비범한 여성의 특징은, 개차반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서도 뭔가 하고자 하는 일이 생기면 얼마만큼의 방해 요소가 따르든 그에 몰두한다는 것. 조이는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키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를 하는 아버지와, 그의 갑부 여자 친구를 동원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의 계획이 성사되지는 않아서, 그녀는 갖은 수모를 겪는다. 대형마트 앞에서 쓸쓸히 혼자 홍보를 하기도, 그러다 경찰의 제제를 받기도,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 엄청난 빚을 지기도 한다. 그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우연히 작은 홈쇼핑 회사에 자신의 상품을 광고할 기회를 얻는데,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짜릿해서 정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쓰기 편한 대걸레를 고안하는 조이.
홈쇼핑 출연의 기회를 얻어 직접 방송해 출연한다.


마찬가지로 바닥에서 성장했다고 자부하는 홈쇼핑 회사의 임원 '닐'은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조이를 알아본 걸까. 모두가 대걸레를 든 조이를 비웃는 상황에서 닐은 침착하게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그 기회 중 한 번의 홈쇼핑 방송은 참혹히 실패했고, 그로 인해 그녀는 가족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오뚝이 같은 조이는 그 후에 자신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전문 쇼호스트가 아닌 발명자인 조이 본인이 그 상품을 광고하기에 이른다. 제품을 발명한 본인이자 친숙한 주부의 입장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 조이의 모습에, 주문전화는 빗발치고, 홈쇼핑은 전례 없는 '전량 매진'으로 끝이 난다. (나는 이 부분을 세 번이나 돌려봤다.)


그렇게 조이는 홈쇼핑 역사에 신화를 거듭하며, 가난한 주부에서 전설의 아이콘이 된다. 그녀는 엄청나게 편리한 물건들을 직접 개발해냈으며 (어깨에 벨뱃이 달려 옷이 미끄러지지 않는 논슬립-옷걸이도 그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가족들의 평생을 보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 겪어야 했을 생활고와, 남들의 멸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전설'이나 '인생역전' 같은 단순한 단어에 묻히기에 감히 짐작지도 못할 크기의 것들이었을 테다. 어쩌면 그런 나이테가 쌓여야만 전설이 될 수 있는 것일 테고.


다른 쇼호스트들이 번쩍이는 옷에 장신구를 치렁치렁 매달고 방송을 할 때, 흰 셔츠에 바지 차림으로 '이게 나예요'라며 밀고 나가던 조이의 당당한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그동안 몰랐던 성공의 필수요소들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모두가 비웃을 때 나를 지지해주는 단 하나의 응원의 목소리라는 것을.


어린 조이에게 늘 희망을 주었던 할머니. 손녀에게도 같은 희망을 준다.


"넌 아주 강하고 똑똑한 여자로 자라서, 예쁜 아이들을 낳고 근사한 일을 이뤄낼 거야. 그게 네게 벌어질 일들이란다" 이 영화의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자, 조이가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어른인 할머니는 어린 조이를 붙들고 늘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조이는, 정말 할머니의 염원대로 낙담하고 사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조이의 첫 홈쇼핑 방송 몇 분과, 그녀에게 주문처럼 응원의 말을 되뇌던 할머니가 기억날 것 같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10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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