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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l 02. 2020

사연 없음

사연 없음이 너의 가장 큰 무기인걸


남편과 차를 타고 가던 중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남편의 남동생, 그러니까 나의 도련님이 과거 가수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시댁 어르신들이 도련님에게 그랬단다. 너는 사연이 없어서 안 된다고.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든지 계속해서 안 풀렸던 기구한 사연 같은 것이 없으니, 어디 방송에서 써먹을 스토리나 있겠느냐고. 이제는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기구한 사연마저도 하나의 스펙이 되어가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너무도 무탈하게 커 온 도련님을 빗댄 시댁 어르신들의 농담이었다.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내 남편도 마찬가지다. 화목하고 비교적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란 내 남편. 살면서 기구한 적도 애달픈 적도 없었던 남편은 얼굴에 살아온 행적이 고대로 쓰여있다. 그 평화롭고 맑은 눈과 표정이 그가 얼마나 평화롭게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으니. 어쩌면 본능이었을까, 나는 연애시절부터 남편이 가진 그 특유의 평온함에 끌렸다. 나름 기구했던 나와는 달리 그에게서 느껴지던 그 구름 같은 평온함 말이다. 나는 내 얼룩진 사연들과 그로 인해 빚어진 수많은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그를 만나며 치유해 나갈 수 있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시댁 어르신들은 우스갯소리로 "너는 사연이 없어서 안 돼"라고 하셨다만, 나는 그 댁의 그 사연 없는 아들에게 반해 결혼까지 했으니, 한 사람의 '사연 없음'이란 사실은 얼마나 큰 무기인가. 어디다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스토리텔링은 부족할지언정, 누군가에게는 그 평탄함이 다른 이를 치유할 만큼 커다란 힘이자 매력으로 작용하는데. 그분들이 던진 농담 속에는, 당신들이 얼마나 건강히 자식을 잘 키웠는가 하는 일말의 자부심이 묻어있었다는 걸, 역시 남편은 모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그런 농담을 할 수 없을 내 부모님이, 평생동안 내게 얼마나 미안해했을지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가난과 열등감 속에 키워야 했던 하나뿐인 딸. 사연 많은 딸. 하지만 그 딸은 크게 엇나가지 않고 성장해 평생 평온으로 나를 보살필 배우자도 만났으니, 이제 부모님이 나에 대한 미안함과 근심을 조금 덜었으면 하는 게 나의 소망이다. 남은 삶은 되려 내가 수혈 받은 평온을 부모님께 드리는 삶이되길. 나와 내 가족들의 남은 삶이 부디 사연 없길. 바란다.







해당 글은 에세이 <사연 없음>에 수록된 글입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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